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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천기’불순 시대의 서바이벌리즘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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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3호 02면

천안함 침몰 사건 이후 국가 안보가 위기에 처해 있다. 최근 아이슬란드 화산재 폭발로 대규모 항공기 결항 사태가 발생했다. 인간이 인간의 공격 앞에, 자연의 재앙 앞에 얼마나 무력한 존재인지 드러났다. 개인이든, 국가든, 인류든 언제 어디서 터질지 모르는 위험에 대처하는 매뉴얼이 필요한 시대다.

대처 방안으로 고려할 만한 것은 미국과 영국을 중심으로 형성된 생존주의(survivalism) 전통이다. 이들 국가에는 미래의 지역적, 국가적, 혹은 국제사회의 붕괴 가능성에 적극적으로 대비하는 개인이나 생존주의 운동 단체가 있다. 이들은 핵전쟁 같은 여러 종류의 비상사태에 대비한다. 생존주의자들(survivalists)은 긴급 의료 훈련을 받고 비상 식량을 비축하는가 하면 위기 상황에 대비할 수 있는 자위적 시설물을 건설한다. 집에 있는 주요한 생활물품들을 한꺼번에 모아 포장한 상품도 시장에 나와 있다.
서양의 종말론적 전통이 이들 국가에서 생존주의가 발달한 배경이다. 순환적 세계관이 특징인 동양 종교와는 달리 기독교 세계관에 따르면 세상은 언젠가는 망한다. 지금이 그때라는 것이다. 게다가 2001년 뉴욕 무역센터를 가격한 9·11 테러 공격, 에너지 고갈 위협, 인도양의 쓰나미, 미국 해안을 수시로 강타하는 허리케인, 조류 독감, 기후 변화에 따른 천기 불순이 생존주의에 힘을 실어줬다.

영국 경제학자 토머스 맬서스의 ‘인구론(人口論·1798년)’까지 새로운 시각에서 조명된다. 인터넷, 블로그를 통해 생존주의자들은 정보를 활발히 교환하고 있다. 2007년의 월스트리트발 경제 위기까지 생존주의자들을 긴장시키고 있다. 생존주의 관련 저서들도 베스트셀러 목록에 오르고 있다. ‘2012년’ ’투모로’ 등 최근의 종말론적 할리우드 영화도 이러한 생존주의 전통과 무관하지 않다.

우리 눈에는 서양 사람들의 호들갑처럼 보이지만 참조할 만한 사안도 꽤 있다. 예컨대 생존주의자들이 구비하고 있는 것으로는 ‘72시간 킷(kit)’이 있다. 이 킷은 구조 인력이 도착하기까지 3일을 버티게 해주는 분량의 식량·식수, 응급 의료 기구 등으로 구성됐다. 생존주의는 개인이나 단체뿐만 아니라 정부 차원에서도 일면 장려되고 있다. 개인 차원의 생존주의 운동이 활발한 나라는 미국·영국 말고도 호주·벨기에·캐나다·프랑스 등이다. 스위스의 경우 모든 새로운 다세대용 주택에 방사능 낙진에 대비하는 시설을 의무화하고 있다.

우리는 한국전쟁이라는 민족적 재난과 그 이후 남북 대치 상태에서 남북 간에 발발한 크고 작은 분쟁 때문에 오히려 국가적, 전 세계적 생존위협에 대해 오히려 둔감한 면이 없지 않다. 생존주의 매뉴얼 짜기를 진지하게 생각해 볼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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