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 같지 않은 녹차 밭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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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3호 11면

모처럼 화개 골짜기 녹차 밭을 찾았습니다. 벚꽃이 진 늦봄과 초여름 길목엔 녹차 만드는 농가는 눈코 뜰 새 없어야 합니다. 하지만 날씨가 수상해 지난주에 내린 눈과 서리에 움튼 녹차 싹이 추위를 입어 일손을 놓고 있습니다. 이 시기면 달군 솥에서 요동치며 오르는 녹차 향에 빠져야 하는데 이렇게 남의 동네 구경이나 다니고 있습니다. 일 년 농사 중 가장 긴장도가 높을 때에 한가한 것도 오히려 근심입니다.

PHOTO ESSAY 이창수의 지리산에 사는 즐거움

계절이 게으르게 가니 사람도 같이 게으르게 가지만 어차피 할 일은 빨리 하는 게 속 편합니다. 매도 먼저 맞는 게 낫듯이. 할 일을 하지 못한 괜한 마음으로 혼자 구시렁대고 있습니다. 서지도 앉지도 않은 할머니가 밭둑 길에 핀 나물을 캐고 있습니다.
아침 해가 산등성이에서 내려와 지난해서 굽은 할머니의 등성이를 비춥니다. 할 일은 찾으면 항상 쌨다고 아침 해와 할머니가 몸소 일러줍니다.아직도 멀고 먼 산중생활입니다.


이창수씨는 16년간 ‘샘이깊은물’ ‘월간중앙’등에서 사진기자로 일했다. 2000년부터 경남 하동군 악양골에서 녹차와 매실과 감 농사를 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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