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지금이 국론분열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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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나라가 여러 모로 어려운 것은 사실이다. 경제가 그렇고 정치가 그렇고 대외관계, 교육.환경문제 등 어려운 사정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그러나 그같은 어려움보다 더 심각한 것은 비관주의의 팽배다. 언론사태와 방북단의 후유증이 있은 후 우리는 흔히 국론분열이라는 말을 쓴다. 이는 국가장래의 비관주의와 바로 연결되고 있다.

***방북단 일부의 돌출행동

국론분열은 심각한 것인가. 그래서 나라가 가는 길이 걱정스러운 것인가. 반드시 그렇다고 보아서는 안된다. 민주주의란 원래 다양한 의견을 전제로 한다.

하나의 의견으로 일사불란(一絲不亂)하다면 그게 오히려 이상한 일이다. 다양한 의견이 있다면 그 가운데는 극단적인 의견도 있을 수 있는데 그 극단주의를 어떻게 걸러내느냐 하는 것이 바로 사회의 역량이다.

8.15 방북단의 일부가 보여준 행태는 극단주의다. 이 극단주의를 우리사회는 어떻게 여과하고 있는가. 그들의 행동을 저지할 뚜렷한 정치세력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들을 사법처리하겠다는 검찰을 공격하는 소리도 그리 높지 않다. 방북을 허가한 정부의 책임에 대해서도 의견은 갈려 있다. 통일부장관의 퇴진문제에 대해 여권 내에서 찬동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야당 안에서 반대하는 사람도 있다.

그렇게 의견이 갈리는 것은 민주적 정당에서 당연한 일이다. 이것을 정치세력의 내부분열이나 더욱이 국론분열이라고 볼 이유가 없다.

국론분열을 말하면서 해방 직후의 정국과 비슷하다고 걱정하는 소리도 있다. 그렇게 보는 것이 타당한가. 해방 직후의 사상적 혼란은 정부수립 이전이다. 어떤 나라를 어떻게 세우느냐는 논의와 맞물려 있는 국론분열이었다.

지금 우리에게 나라가 없는 것도 아니고, 나라가 나아갈 방향에 혼선이 있는 것도 아니다. 민주주의를 지키고 평화노력을 계속한다는 국가목표에 이의를 달 사람은 거의 없다. 설혹 극소수가 있다 해도 발 붙일 여지는 더더욱 없다고 보아야 한다.

방북단 소요와 관련해 방문단 본부측은 일부의 돌출행동이었다고 해명했고,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은 이 돌출행동에 대해 유감의 뜻을 표한 바 있다. '유감의 뜻' 에 우리는 유의할 필요가 있다.

미국 캘리포니아주에서는 교통사고 현장에서 "미안하다" 는 말을 해도 그것을 '잘못한 것' 으로 인정하는 증거로 삼지 않는다는 새로운 법을 올해 2월부터 시행하고 있다. 이 법을 흔히 '아이 엠 소리 법' 이라고 부른다. 사고를 냈을 때 미안하다는 말을 해 그것이 재판에서 불리하게 작용한다면 누구도 미안하다는 말을 안하려들 것이다.

그러나 '아이 엠 소리 법' 이 있건 없건간에 교통사고의 책임은 가리게 마련이다. 방북단 소동에 대해서도 법적.정치적 책임은 가려지게 마련이다. 법적 책임은 이미 검찰이 손을 댔으니까 사법부가 가려낼 것이다. 통일부장관의 정치적 책임에 대해서는 최종적으로 '침묵하고 있는 다수' 의 국민이 묻게 될 것이다.

언론사태도 그렇다. 김대중 정부의 그같은 언론정책을 일찍이 예측한 사람도 있었고 외국에 비슷한 사례가 없는 것도 아니다. 문제는 그같은 언론정책의 성패와 평가의 문제다.

***침묵하는 다수 생각했으면

매스 미디어에 대한 미국 닉슨 대통령의 기본자세는 "미디어의 신용을 실추시키면 나에 대한 신용은 그만큼 올라간다" 는 것이었다(크롱카이드의 말). 언론에 대한 적의(敵意)때문에 닉슨은 자기가 싫어하는 언론인의 블랙 리스트를 만들어 출신대학.사상.보도경향을 기록하고 그 중 몇명에 대해서는 세무신고에 허위가 없는지를 조사했고, LA타임스에 대해서는 피고용인의 이민수속에 문제가 없는지도 조사했다.

그밖에도 특정사에 대한 취재상의 불이익, 방계회사 압박 등 갖가지 방법으로 언론의 목조르기를 했지만 결과는 실패한 것으로 평가된다. 제2차 세계대전 후 암울했던 유럽에서 지식인들은 유럽재건을 외쳤다. 앙드레 말로 같은 이는 특히 좌절하지 말자는 데 역점을 둔 문화운동.사회운동을 펴나갔다.

최근의 불행한 언론사태에 관해 내외의 많은 사람이 관심과 우려를 표명하고 있다. 몇몇 지식인그룹도 발언을 했다. 그같은 발언은 비관주의에 바탕을 두지 않고 나와야 한다. 그래야 '침묵하고 있는 다수' 가 좌절하지 않기 때문이다.

김동익 (前 정무장관.본사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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