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쩌민 방북] 평양행=퇴진 징크스 깨질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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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장쩌민 주석이 어려운 발걸음을 뗐다' . 3일부터 5일까지 2박3일간에 걸친 江주석의 북한 방문을 두고 베이징 외교가에 나도는 말이다.

북.중 양국의 관계가 미묘해서가 아니다. 의제가 무거운 탓도 아니다. 역대 북한을 방문했던 중국 지도자들이 귀국 후 얼마 안돼 실각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던 데 기인하는 말이다.

1978년 5월 북한을 방문했던 당시 당 주석 겸 총리 화궈펑(華國鋒)은 그해 12월 열린 중국 공산당 제11기 중앙위원회 제3차 전체회의(3中全會)에서 덩샤오핑(鄧小平)과 노선 투쟁 끝에 패배, 몰락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85년 5월 북한을 방문하고 돌아온 당시 당 총서기 후야오방(胡耀邦)은 이듬해 겨울 사직서를 제출했다. 胡의 뒤를 이은 자오쯔양(趙紫陽) 또한 89년 4월 북한을 방문하고 돌아와 불과 두달도 안돼 6.4 천안문 사태를 맞고서는 실각했다.

92년 4월 북한을 방문했던 양상쿤(楊尙昆) 당시 국가주석은 지나치게 그 세력이 커지는 것을 우려한 덩샤오핑에 의해 그해 겨울 국가주석 자리를 내놓아야 했다. 재미있는 점은 이들의 실각은 모두 덩샤오핑의 영향에 의해 이뤄졌다는 점이다.

아무튼 베이징 외교가에선 이처럼 많은 중국 지도자들이 북한 방문에서 돌아온 지 얼마 안돼 현직에서 물러난 경우를 보고 '북한 방문은 어려운 발걸음' 이라는 말이 유행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특히 2002년 가을에는 江주석의 거취 여부 등이 결정되는 제16차 당 대회가 예정돼 있어 江주석이 어려운 발걸음을 뗐다는 말이 도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그러나 江주석만큼은 다소 예외로 인식되고 있다. 江주석은 90년 3월 14일부터 16일까지 2박3일간 북한을 방문하고 돌아왔지만 그 권력이 한층 더 강화된 것이다. 당시 당 총서기 신분으로 해외 첫 방문지로서 북한을 선택했던 江주석은 김일성(金日成)북한 주석으로부터 대단한 환대를 받아 입지가 오히려 강화되는 효과를 챙겼다.

89년 구(舊)소련 붕괴가 김일성과 江주석간 주요 화제였으며 당시 중국어에 능했던 김일성은 '러시아의 보리스 옐친 대통령이 미국을 꼬드기고 있다' 고 상하이(上海)사투리로 말해 江주석과 한동안 상하이 사투리를 이용한 대화가 이뤄질 정도로 분위기가 좋았다는 후문이다. 江주석의 이번 방북은 11년 만의 일이다.

베이징=유상철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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