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일하는 복지'로 전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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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국가는 실업자의 봉이 아니다. " 요즘 독일의 실업자들은 울상이다.

그동안 유럽 최고수준의 사회복지제도 덕분에 일자리가 없어도 마냥 놀고 먹기에 좋았던 독일이 허리띠를 바짝 조여매고 있어서다.

1989년 집권 이후 신중도(Die neue Mitte)를 표방하고 있는 사회민주당(SPD)의 게르하르트 슈뢰더 총리 정부는 현재 사회보장제도를 대폭 줄이는 구조조정에 비지땀을 흘리고 있다.

루돌프 샤르핑 사민당 부당수 겸 국방장관은 최근 주간 벨트 암 존탁지와의 인터뷰에서 "실업자들 특히 25세 이하의 젊은 실업자들이 환경보호.노인간호.환자간호와 같은 공공취로 활동을 거부할 경우(국가로부터의)모든 지원을 받지 못할 것" 이라고 강조했다. 한마디로 일하지 않는 자에게는 빵을 줄 수가 없다는 것이다.

샤르핑 장관의 이번 발언은 전통적으로 사회복지를 최우선 정책으로 삼아왔던 SPD의 지도부에서 나왔다는데서 주목을 받고 있다.

이같은 SPD의 움직임에 야당인 기민(CDU)/기사당(CSU)연합과 재계는 전폭적인 지지를 보내고 있으나 노동계와 젊은 실업자들은 강한 반발을 하고 나서는 등 독일사회에 격렬한 찬반논쟁이 일고 있다.

차기 총리후보로 거론되는 CDU 출신의 롤란트 코흐 헤센주 총리는 "샤르핑 장관의 발언은 CDU가 이전부터 추진하고 있는 '신사회적 시장경제' 의 개념과 일치하고 있다" 면서 "이를 조속히 제도화하는 방안을 추진할 것" 이라고 환영했다.

반면 독일노조총연맹(DGB)의 우어술라 케퍼 부위원장은 "국가가 개인에게 최소한의 생계를 보장하는 것만으로 책임을 다한 것으로 볼 수는 없다" 고 비꼬았으며 케르스틴 뮐러 녹색당 하원 원내의장은 "생계보조를 받는 사람들을 희생해서 새로운 정책적 대안을 찾는 것은 부당하다" 고 비난했다.

그동안 슈뢰더 정부는 영국의 토니 블레어 총리와 마찬가지로 '일하는 복지' 를 표방하며 복지국가는 추구하되 전통적인 좌파가 고집하는 사회복지를 줄여서라도 경제의 효율을 높이겠다는 정책을 펼쳐왔다. 그래서 "독일경제에 해가 되는 것은 그 어떤 정책도 용납할 수 없다" 는 슈뢰더 총리의 기존입장을 감안하면 이번의 사회복지축소 움직임은 이미 어느 정도는 예상돼 왔다.

현지 언론은 슈뢰더 정부가 이처럼 사회보장제도에 직격탄을 날리게된 배경에 대해 고령화 사회가 진전되면서 경제활동 인구의 부담이 커져 어떤 방식으로든 기존제도의 개선이 필요했기 때문으로 풀이하고 있다.

유권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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