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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로 보는 세상] 一山二虎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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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교룡(蛟龍)이라는 상상 속 동물이 있다. 모양은 뱀과 같지만 넓적한 네 발이 있고, 머리는 작지만 비단처럼 부드러운 옆구리와 배가 있다. 연못에 웅크리고 있다가 비구름을 얻으면 하늘로 오른다(蛟龍得雲雨)는 전설을 갖고 있다. 그러기에 교룡은 ‘때를 만나지 못해 뜻을 이루지 못한 영웅호걸’로 비유되기도 한다.

교룡 두 마리가 한 우물에 있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여기서 나온 성어가 ‘일연양교(一淵兩蛟)’다. 한(漢)나라 초기의 문집인 『회남자(淮南子)』에 뿌리를 둔 말이다. 『회남자』는 ‘설산훈(說山訓)’ 편에서 ‘한 연못에 교룡 두 마리가 살지 않아야 물이 고요하고 맑다(一淵不兩蛟,水定則淸正)’고 했다. 하늘을 오르지 못해 울분에 찬 교룡 두 마리가 한 우물에 있다면 치고 박고 싸울 것이라는 얘기다.

요즘은 같은 뜻으로 ‘일산불용이호(一山不容二虎·하나의 산은 두 마리 호랑이를 용납하지 않는다)’라는 말을 많이 쓴다. 산 속 호랑이가 자신의 구역에 침입한 다른 호랑이를 내버려 두지 않듯, 같은 세력을 가진 존재는 둘이 공존할 수 없다는 뜻이다. 침입이 있다면 싸움만이 있을 뿐이다. ‘일산이호(一山二虎)’로 줄여 쓰기도 한다. 중국 현대 소설가인 어우양산(歐陽山·1908~2000)의 소설 ‘산자샹(三家巷)’에서 처음 등장한 말이다. 그는 사이가 좋지 않아 만나면 싸우는 사람을 들어 ‘一山二虎’의 관계로 묘사했다.

‘일산이호’는 국제관계를 설명하는 말로 중국 언론에 자주 등장한다. 아시아에서의 중국과 일본 관계, 세계 정치 무대에서의 중국과 미국 관계가 그 꼴이라는 얘기다. 미국과 중국이, 중국과 일본이 패권을 놓고 으르렁거리며 싸우는 모습이다. 흔히 ‘일산불용이호(一山不容二虎)’ 뒤에 ‘양호상쟁필유상(兩虎相爭必有傷·두 호랑이가 싸우면 반드시 상처를 입는다)’이라는 말이 이어진다.

두 호랑이가 있는 산에서는 ‘용쟁호투(龍爭虎鬪)’ ‘용호상박(龍虎相搏)’이 끊이지 않는다. 날이 밝으면 전쟁이요, 밤이면 암투다(明爭暗鬪). 세계 여러 곳에서 갈등과 분쟁이 이어지고 있다. 산은 언제 고요할 것이며, 연못은 또 언제 청정할 것인가 ….

한우덕 중국연구소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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