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 문화' 강남 분위기·강북 부담없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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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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헐렁한 티셔츠와 반바지 차림에 벙거지 모자를 눌러쓴 바텐더들이 칵테일 병을 돌리며 신나는 쇼를 펼친다. 반주는 백지영의 '대시(Dash)' . 어둑한 실내에 화려한 조명이 번쩍인다. 바 스툴에 나란히 앉아 병맥주를 홀짝이던 손님들은 박수와 함성을 지르다 어느새 친구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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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을 열고 들어서면 어둠에 둘러싸인 촛불들이 고즈넉이 흔들린다. 드럼과 베이스 음악 너머로 까만 생머리를 한 아가씨가 마주 앉은 남자친구에게 무언가를 소곤거린다. 단정한 검정색 복장의 웨이터는 양주와 와인 리스트로 시작하는 메뉴판을 건넨다.

최근 서울의 밤 문화를 지배하는 '바' 의 두 얼굴이다. 묘하게도 한강을 사이에 놓고 강북과 강남의 바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강북은 미국 캘리포니아 스타일의 '맥주 바' , 강남은 뉴욕 분위기의 '양주 바' 로 차별화된다. 강북은 종로를 기점으로 신촌.대학로를 넘나들며 번져가고 있고, 강남은 청담동을 중심으로 압구정동.신사동으로 퍼져가는 중이다. 그러나 강남.강북의 어느 바든 휘청거리고 비틀대는 취기(醉氣)보다는 분위기를 찾는 젊은이들로 가득하다.

◇ 부담없는 분위기에서 맥주 한 잔 하고 싶다면 강북 바=강북 바의 주류는 왁자지껄한 '웨스턴 바' . 미국 서부풍의 인테리어에 세계 각국의 맥주를 입맛대로 즐길 수 있는 곳들이 인기다. 서울 종로의 '산타페' '마피아' 'Ska' '펜트하우스' 등에는 매일 밤 다양한 맥주와 가벼운 칵테일 한 잔을 찾는 20, 30대 학생과 직장인들이 북적인다.

입안 가득 진한 향이 퍼지는 흑맥주 기네스, 깨끗하고 감칠맛 나는 하이네켄, 그리고 거품이 오래 남아 더욱 부드러운 삿포로 등을 5천원에서 1만원 사이의 가격으로 즐길 수 있다. 그래서 이런 바를 요즘 젊은이들은 '맥주 뷔페' 라고도 한다.

손님들은 테이블보다는 나란히 앉는 바 스툴에 앉기를 좋아한다. 눈은 맞추지 않아도 귀를 열고 같은 곳을 바라보며 대화를 나눈다. 옷차림도 편안한 진바지에 티셔츠를 주로 입었다.

서빙맨은 음식을 나르는 사람이 아니다. 손님들에게 즐거움을 주는 엔터테이너가 된다. 밤마다 펼쳐지는 이들의 화려한 '플레이(쇼)' 는 강북 바들이 손님을 끌어 모으는 무기다. 종로에서만 약 20여 곳의 바에서 밤마다 현란한 칵테일 쇼가 펼쳐진다.

'Ska' 에서 만난 박영국(30.학생)씨는 "무리하게 술을 마시지 않으면서 적당한 대화와 분위기를 즐길 수 있어 이곳을 자주 찾는다" 고 말했다.

◇ 이국적 분위기에서 조금은 취하고 싶다면 강남 바=첨단의 유행이 흐르는 청담동에는 '세미 클래식' 혹은 '모던 바' 라고 불리는 세련되고 독특한 분위기의 바들을 쉽게 찾을 수 있다.

밖에서는 카페처럼 보이는 '74' 의 내부에는 짙은 커튼 뒤로 고급스러운 블랙의 바가 은밀히 숨어 있다. 변화하는 영상이 떠다니는 빔 프로젝터 화면 앞에는 창백한 조명 아래 검은 옷차림의 바텐더들이 손님을 기다린다. '아는 사람만 알아서' 찾아 온다는 이곳에서는 테킬라와 앱솔루트 보드카, 발렌타인 17년산이 잘 나간다.

강북 손님들처럼 바 스툴에 앉기보다 각자의 테이블에 앉아 프라이버시를 즐기는 것이 20, 30대 유학생과 전문직 종사자들이 주류인 이곳 손님들의 특징이기도 하다. 깔끔한 복장의 이들은 독주를 스트레이트로 즐기기도 하지만 취향에 따라 칵테일도 만들어 먹는다. 자기 차를 몰고 오는 사람은 무알콜 칵테일을 많이 찾는다.

이 곳 종업원들은 손님들과 눈을 마주치지 않는다. 손님들의 프라이버시를 배려하기 때문. 그렇지만 손님에게 도움이 필요할 때면 그림자처럼 나타난다.

강남의 바를 자주 찾는다는 프리랜서 이재만(28)씨는 "청담동 일대 바들의 경우 독특한 감각을 '아는 사람' 들끼리만 나눈다는 점이 상당히 매력적" 이라고 설명했다.

◇ 왜 '바' 가 뜨는가=4년 경력의 바텐더이자 인터넷 다음 카페에서 '바텐더세상(http://cafe.daum.net/bartenderworld)' 을 운영하고 있는 김승혁(25)씨는 바가 인기를 끄는 원인을 "취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분위기를 즐기기 위해 술을 마시는 사람들이 늘어났기 때문" 이라고 분석했다.

온라인 주류회사 '다술(http://www.dasool.com)' 의 송병근(28)사장은 "노래방이나 닭갈비집 등이 갑자기 늘어났던 것처럼 바역시 본격적인 유행의 바람을 탄 것" 이라며 "소주와 통닭을 팔지 않으면 무조건 '바' 라고 간판만 바꿔 다는 경우도 많다" 고 말했다.

유지상.김현경 기자

사진=최승식 기자

사진=김태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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