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생이 제안하는 '전기 아껴 쓰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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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4면

초등학교 4학년 수진이는 매일 오후 3시면 현관 입구의 전기 계량기 앞으로 달려간다. 오늘 하루 전기 사용량을 체크하기 위해서다.

무더위 때문에 세시간 동안 에어컨을 쓴 어제 사용량은 22㎾. 비가 와서 에어컨을 안쓴 그 전날 사용량 7㎾에 비해 15㎾나 더 나왔다. "엄마, 내일은 에어컨 조금만 켜. " 수진이의 명령이 떨어진다.

주부 김양숙(40.경기도 의왕시 오전동)씨의 큰 딸 수진이가 매일매일 전기 사용량을 체크하기 시작한 것은 7월말. 아파트 사정으로 온수공급이 중단된 게 계기가 됐다.

"두 아이를 목욕시키고 머리까지 감기는 데 큰냄비 하나의 온수로 충분하더군요. 그동안 샤워기 틀어놓고 그냥 흘려보낸 물이 아까워지면서 쓸데없이 낭비하는 물과 전기는 없는지 돌아보게 됐어요. 전기세 누진제도 걱정이었구요. "

김씨는 그날부터 아파트 입구에 종이를 붙여놓고 매일매일 전기 사용량을 적기 시작했다. 32평형 아파트에 네 식구가 사는 김씨 집의 지난 6월 전기 사용량은 2백85㎾. 덥다고 지난해처럼 에어컨을 마구 쓴다면 누진세가 적용되는 3백㎾를 넘을 게 뻔했다.

김씨는 하루에 10㎾ 이상의 전기는 쓰지 않는 것을 목표로 하고 수진이에게 총책임을 맡겼다. 현관 입구에는 날짜별 전기사용량 표를 만들어두고 10㎾를 기준으로 14kw를 썼으면 빨간색으로 +4, 6㎾를 썼으면 - 4하는 식으로 사용량을 표시했다.

먼저 수진이와 김씨는 쓰지 않으면서도 꽂혀만 있던 플러그를 모두 뺐다.

"냉장고.김치냉장고.정수기를 빼고 쓰지않는 전기 플러그를 모두 뺐다고 생각했는 데도 계량기가 돌아가더군요. 집안을 샅샅이 돌아보니 전자레인지와 세탁기의 플러그가 꽂혀 있었어요. "

이때부터 수진이는 6살 동생에게 '냉장고 문을 자주 여닫지 말아라' , 엄마에겐 '컴퓨터 조금만 써라' 등의 잔소리를 해가며 전기 플러그 뽑는 일을 도맡았다. 며칠 전엔 방안에 있는 무선전화기까지 쓰지 말아달라는 주문을 했다. 수진이의 지휘 덕분에 평균 10㎾ 이상 되던 전기 소비량이 요즘엔 7㎾ 정도로 줄어들었다. 더위 때문에 에어콘을 켜야 할 땐 하루 2시간 이내로 사용시간을 제한했다.

김씨는 "20일 동안 1백80㎾밖에 쓰지 않았으니 이달도 전기 사용량은 3백㎾를 넘지 않을 것 같다" 며 "전기세를 절약하는 것도 좋지만 아이에게 절약이 뭔지 알려줄 수 있는 기회가 된 것이 큰 보람" 이라고 말했다.

박혜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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