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집 풍경] 역삼동 '칭(ching)'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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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7면

점심은 살얼음이 동동 뜬 냉면, 저녁엔 펄펄 끓는 삼계탕.

한여름 무더위를 쫓는다고 마구 먹어댄 차갑고 뜨거운 음식으로 뱃속도 꽤나 고생을 했다.

처서(處暑)를 앞둔 가을의 문턱에서 여름내 냉탕.열탕을 겪으며 놀란 속을 죽으로 달래보면 어떨까.

서울 강남구 역삼동 아이타워빌딩 뒷길에 있는 '칭(ching)' .

속이 훤히 보이는 통유리 위로 넓게 펼쳐진 빨간 간판이 지나가는 사람의 시선을 잡는 홍콩 스타일의 죽 전문점이다. 홍콩사람들은 곧잘 죽집에서 아침식사를 해결하고 출근한다.

메뉴판에 등장하는 죽은 10여가지. 4천원짜리 흰죽에서 2만5천원짜리 샥스핀죽과 전복죽까지 있다. 모두가 만만치 않은 값이다.

이 집 죽의 '기본' 이라 할 수 있는 흰죽. 부서진 쌀알이 씹힐 것 같이 보이지만 입 안에서 촉감을 느낄 수 없을 만큼 부드럽다. 찹쌀로 쑨 것처럼 찰지면서도 고소한 맛이 은은하게 남는다.

손님들이 제일 많이 찾는다는 자연송이죽은 1만2천원이란 고가(高價)여서 주문하기 망설여지는 메뉴다. 그렇지만 식탁 위에 오른 죽을 한술 한술 뜨다 보면 자연송이의 마술에 빠지고 만다. 죽 사이사이로 은은하게 씹히는 송이의 맛과 향이 입안 가득 채워지다 못해 온몸으로 번지는 착각이 들 정도다.

중국요리에 많이 등장하는 검게 삭힌 오리알을 넣어 만든 송화단죽(7천원)은 또다른 맛을 준다.

죽에는 기호에 따라 넣어 먹으라고 다진 파가 따라 나오고, 기본 반찬으로 중국식 짜사이와 오이피클이 곁들여지는데 죽 맛을 돋우기에 부족함이 없다.

죽과 더불어 일부 중국요리도 취급한다. 그 중에 해물누룽지탕이 주문 랭킹 1위란다. 식탁에서 식지 않도록 촛불 두 개로 만든 워머(warmer) 위에 올려준다.

누룽지 위에 해물과 야채로 만든 소스를 부으면 "지지직" 소리를 내는데 소리부터 맛나다. 해삼.새우.오징어.소라.죽순.송이.샐러리 등 싱싱한 재료들이 넉넉하다. 어른 서너명이 죽을 먹기 전에 나눠먹을 만한 소(小)크기가 2만5천원.

젠(Zen.禪)스타일의 깔끔한 인테리어에 종업원의 서비스도 만점 수준이다. 단지 음식값이 부담스러운 점이 흠.

유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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