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커비전] 체코전 참패와 히딩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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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선수 선발 때 이미 성공과 실패는 80% 이상 가려진다. "

축구 선진 대륙인 유럽과 남미의 유명 감독들이 즐겨 하는 말이다. 여러가지 해석이 가능하다. 선수 선발이 곧 감독의 성공과 실패로 직결된다는 해석과 감독의 능력이 아무리 뛰어나도 선수들의 능력이 따라주지 않으면 성공할 수가 없다는 의미도 갖는다.

또 감독이 승패에 영향을 끼치는 것은 고작 20% 정도일 뿐이라는 분석도 가능하다.

지난 15일 밤 체코와의 평가전에서 0 - 5 참패 후 한국의 언론들과 팬들은 일제히 대표팀에 대해 비난의 수위를 높였다. 특히 히딩크 감독에 대한 비난이 주류다. 히딩크 비판을 집약해 보면 전술의 한 부분인 포메이션과 선수선발.훈련방법.대표팀 운용.지나친 자기 위주의 팀 통제 등에 관한 내용들이다. 여기에 사생활에 관한 지적도 상당한 부분 차지했다.

다섯골 차 대패는 과연 히딩크로부터 발생되는 문제가 원인일까. 지난 프랑스월드컵.시드니올림픽 예선 탈락의 책임이 모두 차범근.허정무 감독의 무능 때문이었을까. 아니다. 앞서 거론했 듯이 감독의 역할은 분명 한계가 있다.

히딩크가 대표팀을 맡고 난 후 언론과 팬들은 히딩크를 한국축구의 고질병을 고쳐줄 '허준' 이상으로 신격화(□)했고 과도한 기대를 했다. 이 잘못된 기대가 더 큰 실망감과 분노를 안겨줬다.

한국 축구는 현재 유럽의 어느 팀을 만나도 고전할 수밖에 없다. 경기력의 세가지 요인(체력.기술.전술) 중 체력의 열세가 가장 큰 원인이다.

체코전에서 한국은 비록 한 골을 내주기는 했지만 후반 20분까지 거의 대등한 경기를 했다. 후반 중반 이후 와르르 무너지면서 네골을 내준 것은 급격한 체력 저하와 미드필더들이 적극적으로 상대방을 저지하지 않은 허술한 수비 때문이라 하겠다.

대량 실점에 따른 책임은 감독.선수들이 피할 수 없다. 하지만 더 근본적인 원인은 한국 축구의 전체적인 수준에서 찾아야 한다. 대표 선수들은 체코.프랑스와 비교한다면 체력.기술.전술 등에서 모두 현격하게 떨어진다. 이와 같은 원천적인 능력의 한계를 모두 히딩크가 극복해주기를 바라는 것은 무리한 요구다.

우리는 과거를 너무 빨리 잊는다. 왜 히딩크를 영입했는가. 국내 지도자들의 한계를 절감했고 선진 축구에 대한 열망이 가득했기 때문에 자기 살을 떼어내는 아픔을 감내하고 외국인 지도자를 선택했다. 히딩크는 나름대로 선진축구의 흐름인 빠른 템포의 팀 플레이를 시도했고 일자 백시스템을 적용했다.

일본 축구가 비약적인 발전을 하기까지는 J리그에서 외국지도자들이 선진화한 축구를 전수했으며 대표팀도 트루시에 감독 이전 네덜란드 오프트 감독이 문화적 차이를 극복하는 징검다리를 놓았다.

며칠 전 월드컵 16강 달성 여부를 묻는 정부 고위 관료에게 "초.중.고 때 놀던 학생에게 족집게 과외선생을 붙인다고 명문대에 진학시킬 수 있는가" 라고 대답했던 것이 체코전 대패에 대한 나의 생각이다.

신문선<본지 축구 해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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