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햄버거속의 진실 밝힌 '패스트푸드의 제국' 출간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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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1 요즘 유럽 여행을 떠나는 우리나라 젊은이들의 배낭에선 컵라면이나 고추장을 찾아보기 힘든 지 오래다. 현지 음식이 입에 안맞을 때도 다 해결책이 있기 때문이다.

황금빛 아치 모양의 대형 'M' 자 로고와 맥도널드 광대인형이 지친 젊은이를 맞아주는 곳을 찾으면 그만이다. 지구촌 어디서나 똑같은 맛의 빅맥과 코카콜라 한 잔은 이미 '젊은이를 위한 일상식' 이다.

#2 1990년 러시아 모스크바 시내 중심 푸슈킨 광장 앞. 평일에도 몇 백m씩 줄이 서있는 건 예사였다. 놀이공원 인기코너처럼 몇십분이나 기다려 이들이 들어가려는 곳은 바로 그해 1월 문을 연 맥도널드 가게. 이쯤 되면 패스트푸드가 아니라 '슬로푸드' 인 셈이지만 매장의 밝은 분위기와 말끔한 종업원들의 서비스에 모스코비치들은 감동에 젖어 햄버거를 먹었다. 오죽하면 맥도널드는 '소비에트 붕괴' 를 실감케 하는 상징으로 외신뉴스까지 탔을까.

#3 1997년 미국 어린이들 사이에선 티니 비니 베이비란 캐릭터가 유행이었다. 맥도널드사는 세살에서 아홉살 사이의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한 '해피밀' 세트에 이 인형을 끼워줬다. 그 결과 주당 평균 판매량이 1천만개였던 해피밀은 열흘 동안 1억개가 팔렸다. 패스트푸드사와 장난감 회사가 연계해 '누이 좋고 매부 좋았던' 아동 마케팅의 대표적 사례다.

참깨가 송송 박혀있는 먹음직스런 햄버거에 숨어있는 정치.경제학은 이런 차원을 훨씬 넘어선다. 신간 『패스트푸드의 제국』(원제 Fast Food Nation)은 그 두 개의 햄버거빵 사이에 숨어있는 진실을 규명하는 책이다.

패스트푸드 산업이 미국인의 식단 뿐 아니라 정치.경제.청소년 문화 등을 어떻게 변화시켜왔는지, 쇠고기 향내를 모방한 프렌치프라이의 맛에 담긴 '천연 감미료' 의 비밀은 무엇인지를 보여준다. 문화 제국주의의 상징으로 인식되면서 미 대사관과 함께 테러의 목표물이 되고 있는 현실까지를 담은 이 책은 그야말로 '패스트푸드 제국의 모든 것' 을 보여주는 리포트다.

이에 따르면 현재 미국인들이 패스트푸드를 먹는데 쓰는 돈은 1천1백억달러가 넘는다. 영화.책.잡지.신문을 보고 비디오와 음반을 사는데 사용한 돈을 모두 합한 것보다 많다.

맥도널드사는 오늘날 전 세계적으로 2만8천개의 레스토랑을 운영하고 있고 매년 2천개 정도를 추가로 연다. 그들이 미국의 쇠고기.돼지고기.감자 구입의 가장 큰 손인 것도 당연하다. 뿐인가. 체인점을 낼 때 본사가 직접 부지를 구입해 임대해주기 때문에 세계에서 상업 부동산 부지를 가장 많이 가진 회사이기도 하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패스트푸드와 그 산업의 영향력에서 자유로운 이는 지구촌엔 아무도 없어 보인다. 세상을 인식하는 미국적 사고 방식을 이해하는 데도 패스트푸드 산업에 대한 이해가 필수적이다.

저자는 우선 남부 캘리포니아의 핫도그와 햄버거 판매대 몇 개에서 시작된 패스트푸드 산업이 2차 세계대전을 전후해 자동차 산업의 발전과 관련을 갖고 발전하게 된 과정을 조망한다.

그리고 드라이브 인 레스토랑의 주방에 공장 조립라인의 원리를 적용함으로써 레스토랑 산업에 혁명을 가져온 리처드와 모리스 맥도널드 형제, 그들의 가게를 프랜차이즈 사업으로 확대한 맥도널드사의 실질적 창업주 레이 크록, 그밖에 고아.중퇴생 등 사회 저층민 출신 패스트푸드 창업자들의 '성공 시대' 서술이 이어진다.

미국의 정치사상잡지 '애틀랜틱 먼슬리' 기자인 저자의 비판적 목소리가 점점 커지는 것은 패스트푸드의 정치 공학(工學)때문이다. 이를테면 70년대 패스트푸드사들은 닉슨 대통령에게 거액을 기부해가며 노동자의 안전과 식품 안전, 최저 임금 보장 등을 반대하는 로비에 열중했다.

또 패스트푸드사들 덕에 성장한 식품산업복합체들은 소규모 목축업자들의 자립기반을 잃게 했다. 매장에서 일하는 10대들은 노조도 만들지 못한 채 저임금.초과근무에 시달리고, 도살장 노동자들은 위험한 작업환경에 노출돼 있다는 것이 저자의 지적이다.

특히 저자가 패스트푸드의 가장 직접적 폐해로 비판하는 것은 비만과 질병문제다. 이를테면 패스트푸드사들은 매장에서 가장 이윤이 남는 탄산음료를 더 팔기 위해 무차별 광고를 퍼붓고 있다. 오늘날 세계에서 코카콜라가 가장 많이 소비되는 공간이 맥도널드다.

탄산음료 한 캔에는 설탕 열 숟가락 분량의 당분과 카페인이 함유돼 있다는 사실은 무시한 채 말이다. 또 햄버거 고기에서 이콜리(O - 157)균이 발견된 뒤에도 업체들의 로비로 리콜이 저지되고 있다. 책의 부제대로 '패스트푸드가 우리의 생명을 노리고 있다' 는 것이 저자의 경고다.

책의 미덕은 폭로에 그치지 않고 대안을 제시한다는 점에 있다. 아이들에게 칼로리 높은 음식을 팔기 위한 광고를 금지시킨다든지, 독자적 식품안전기구를 만들자는 제안은 그 중 하나다.

무엇보다 의미있는 변화를 위해 그가 제안하는 첫걸음은 명쾌하다. 안 사먹으면 된다는 것이다. 소비자의 힘을 보여주자는 그의 제안이 어떤 반향을 얻을지는 두고 볼 일이지만, 이 책을 본 뒤 패스트푸드점을 들어가는 발걸음이 다소 무거워질 것은 분명하다.

김정수 기자

그래픽=박경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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