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립형 사립고 조기 도입…배경과 전망]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3면

교육계의 첨예한 갈등을 빚고 있는 자립형 사립고 도입 여부가 16일 경기도 이천시에서 열리는 전국 시.도 교육청 교육감 회의에서 논의된다.

회의에서는 교육인적자원부가 현재 중학교 2학년이 해당되는 2003학년도에 시행하려던 자립형 사립고 시범 학교 지정 계획을 한해 앞당기는데 따른 문제점들을 집중 검토할 전망이다.

현재 서울시 교육청은 입시 과열을 부추긴다는 이유로, 일부 교육청은 일선 학교 여건상 도입이 불가능하다는 의견이다.

1995년 '5.31 교육개혁' 이후 추진해온 자립형 사립고교 도입이 ▶10월 학교 선정▶12월 전형 실시 등 2002학년도부터로 앞당겨진 배경에는 경제부처의 요구가 강하게 반영됐기 때문으로 보인다.

그러나 사립 초.중.고교가 매년 1조7천억원씩 국고지원을 받으면서 공.사립 구분이 없어진 데다 사립학교에서는 자립 의지를 키우지 않고 있는 현행 초.중등교육 체제를 이번 기회에 개선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 공립화한 사립학교=99년 이후 사립학교에 쏟아붓는 국고는 매년 1조7천억원이 넘는다.

사립학교 교원 인건비는 물론 학교 시설 증축 공사비도 국가가 돈을 댄다. 각 지방교육청이 한해 지출하는 교육예산의 10%나 된다.

지난해 민주당 교육위원회 소속 국회의원들이 조사한 결과 재단 전입금이 학교 예산의 1% 미만인 중.고교가 절반이 넘는 69.5%였다. 토지.건물 등 수익용 재산을 갖고 있는 재단이 거의 없어 국가에 손을 벌리고 있는 실정이다.

한국개발연구원(KDI) 우천식 연구위원은 "우리는 평준화를 이유로 등록금을 똑같이 받도록 하는 등 공.사립학교에 차별을 두지 않아 교육의 질이 좋아지기 어렵다" 고 말했다.

즉 공.사립간 차별성이 인정돼야 사립학교들이 '자립 의지' 를 키우게 되며, 다양한 학교 체제 속에서 학생.학부모들의 선택과 학교간 선의의 경쟁이 있어야 질 개선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 자립형 사립고 조기 도입 배경=지난달 20일 청와대 회의에서 확정된 교육여건 개선사업(4조3천억여원 소요)에 따라 경제부처는 교육부가 줄기차게 요구해온 학급당 학생 수 경감과 교원 대폭 증원을 위한 재정지원을 약속했다. ▶고교 필수과목 축소▶대입제도 개선▶자립형 사립고교 조기 도입 방침도 함께 발표됐다.

교육부의 고위 관계자는 "자립형 사립고교 도입 계획은 경제부처가 요구한 것" 이라고 밝혔다. "막대한 예산이 드는 교육여건 개선사업 등 하드웨어 개혁을 받아들일테니 교육 시스템도 개혁하라" 는 경제부처의 주문이었다는 것이다.

한국개발연구원은 지난해부터 자립형 사립고교의 조속.확대 도입을 통해 사립학교에 대한 국고지원을 줄일 것을 건의해 왔다.

전교조 이경희 대변인은 "당초 2003학년도부터 전국 10~20개교에서 자립형 사립고를 시범 운영하겠다고 했다가 도입 시기를 1년 앞당기면서 시범학교를 30개교 이내로 늘린 것은 공교육에 대한 불만을 잠재우려는 정치.경제적 논리에 따른 것" 이라고 비판했다.

강홍준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