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상반기 실적 줄줄이 '사상 최고 · 최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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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올 상반기 기업들의 경영성적표가 '사상 최대' '수십년 만의 최고' 등의 기록을 연일 쏟아내고 있다. 경기가 침체됐다고 야단인데 '우수한' 성적표를 받는 기업들이 많아 의아할 정도다.

내막을 알고 보니 영업을 잘한 면도 있지만 금리가 낮아진 덕에 이익이 눈덩이처럼 불어난 기업, 환차익을 본 기업들도 많다.

지난 상반기에 선전한 국내 주요 기업들의 경우 저금리.환율상승 같은 '금융효과' 가 역력하다.

올 상반기 창사 이래 최고 실적을 거둔 현대자동차는 7천9백18억원의 경상이익 가운데 2천억원은 환율상승, 8백억원은 저금리 덕분이라고 자체 분석했다. 수익의 3분의1 가량이 영업과 직접 관련이 없는 요인에서 나온 것이다.

구조조정 효과가 나타난 면도 있지만 실세금리 제로 시대를 맞아 회사채 차환발행 등으로 금리부담을 덜고, 환율상승을 수출의 호기로 삼은 기업들이 빼어난 실적을 냈다.

한국금융연구원의 박종규 연구위원은 "올해 회사채 만기물량이 몰려 있어 기업들이 저금리 반사 이익을 더 볼 것" 으로 내다봤다.

◇ 저금리 효과 톡톡〓현대자동차를 비롯해 신세계.SK텔레콤.태평양.LG건설.한진해운 등은 극심한 경기위축 속에서도 올 상반기에 사상 최대의 영업이익을 낸 국내 업종 대표기업들이다. 증권거래소에 따르면 이들을 포함해 기아자동차.현대모비스.LG전선.유한양행.동국제강 등 20여곳이 창사 이래 최고의 실적을 거둔 것으로 나타났다.

회사채 발행이 많은 백화점 업계는 저금리 혜택을 톡톡히 본 곳들. 신세계는 상반기 경상이익이 지난해 전체를 웃도는 1천1백33억원으로 사상 최대지만 금리하락 효과가 컸다. 상반기에 1천5백억원의 회사채를 차환 발행하면서 회사채 금리를 14%에서 8%로 떨어뜨려 지난해보다 80억원을 절감했다. 이를 포함해 금융비용을 1백60억원 줄임으로써 금융비용 부담률이 1.39%(지난해 상반기 2.09%)로 떨어졌다.

롯데백화점도 올들어 3천억원의 회사채를 차환발행해 상반기에 1백50억원을 절감했다. 현대백화점은 상반기 경상이익 증가분 1백억원의 절반 가량이 금융비용 절감 때문이다.

워크아웃(기업개선작업) 중인 쌍용자동차가 10년 만에 경상이익(1백70억원)을 낸 것도 금융비용 절감효과가 절대적이었다. 이 회사가 올 상반기 절감한 이자비용이 경상이익과 맞먹는 1백70여억원에 달했다.

㈜두산도 하반기에 회사채를 연 8.5% 조건으로 만기연장해 연간 2백50억원의 금융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고 기대했다.

◇ 환율 상승도 한몫〓자동차.조선.운송 업종은 환율 상승에 따른 수출 효과가 큰 업종들. 올해 상반기 평균 환율(달러당 1천2백92원)이 지난해(1천2백30원)보다 14%나 올라 현대자동차 등 수출비중이 큰 기업들의 매출과 수익성을 높였다.

한화증권의 윤형호 기업분석팀장은 "열심히 장사만 하면 되는 시대가 아니라 금리.환율 등 금융 변수가 기업 수익성에 절대적 요인으로 떠올랐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고 말했다.

금융효과뿐 아니라 업종 특성도 이익을 크게 좌우했다. 신세계.태평양.삼일제약 등 도소매.화장품.제약 등 내수업체들은 소비 경기가상대적으로 덜 침체돼 좋은 실적을 유지했다.

건설업종은 부동산에 돈이 몰리면서 미분양 아파트 등의 소진과 함께 상당수 업체의 실적이 호전됐다.

구조조정 효과가 나타나기 시작한 업체들의 경영성적도 두드러졌다. 태평양은 비주력 사업을 10년간 꾸준히 매각한 효과가 올해 본격적으로 나타났고, 현대모비스는 전체 사업의 80%를 리스트럭처링(재배치)하는 노력을 기울였다. LG건설은 수익성 낮은 공사를 외면하고 본사와 현장을 잇는 인터넷 시스템 등을 도입해 연간 1백50억원의 관리비를 절감했다.

홍승일.김태진.김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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