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이즈미 '13일의 신사참배' 생중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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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총리가 13일 오후 전격 참배를 강행한 야스쿠니 신사는 총리 참배를 보려고 몰려든 일반 참배객과 보도진으로 북새통을 이뤘다.

○…고이즈미 총리는 오후 4시30분 연미복 차림으로 관용차편을 타고 신사에 도착, 정문이 아닌 귀빈용 통로를 통해 본당으로 들어가 비장한 표정으로 참배를 했다. 방명록에는 '내각총리대신' 이라고 기재했다.

총리는 신사 참배가 헌법상의 정교분리에 위반된다는 지적을 의식한 듯 두번 박수를 치고 한번 절을 하는 전통 신도(神道)식 참배가 아니라 딱 한번 절을 하는 방식으로 종교색을 희석시켰다.

일반 참배객들은 신사측에서 미리 나눠준 일장기를 열광적으로 흔들어대며 고이즈미 총리를 환영했으며 총리가 손을 들어 인사를 하자 '와' 하며 환호성을 연발했다.

○…이날 오후 3시부터 야스쿠니 신사 주변에는 경찰의 교통통제가 이뤄져 극심한 차량 정체 현상이 벌어졌다. 오후 3시30분부터 권총을 휴대한 정복 차림 경찰이 보도진과 참배객을 통제하기 시작했다.

NHK를 비롯한 일본의 방송사들은 고이즈미 총리의 참배를 TV생중계했으며 한국.중국 등 외국 언론들도 깊은 관심을 갖고 취재했다.

또 야스쿠니 신사 주변 상공에는 언론사의 취재헬기 및 경찰의 경비헬기 10여대가 한시간 정도 맴돌기도 했다.

○…민주당.공산당 등 야당들은 물론 연립여당인 공명당도 비난하고 있다. 간자키 다케노리(神崎武法)공명당 대표는 이날 "총리가 여러 배려를 한 점은 인정하지만 그래도 헌법이 규정한 정교분리 원칙을 위반한 의혹이 있는데다 외교적인 문제가 숱하게 지적됐음에도 참배한 것은 매우 유감스럽다" 고 말했다.

그는 "외교적 마찰이 불가피해진 만큼 정부는 앞으로 성의를 다해 외교관계 개선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 며 "연립여당은 국립묘지 설치 문제를 진지하게 검토해야 한다" 고 강조했다.

하토야마 유키오(鳩山由紀夫)민주당 대표도 "15일을 피하기 위해 애매모호하고 고식적인 방법으로 참배를 강행했다" 며 "A급 전범 합사, 헌법의 정교분리 저촉 여부의 문제는 여전히 남아 있다" 고 비난했다.

도이 다카코 사민당 당수도 "A급 전범 분사(分祀)문제를 전혀 언급하지 않은 것은 아시아 외교에 대한 깊은 배려가 결여된 것" 이라고 지적했다.

○…야스쿠니 신사 정문 부근에서는 전일본학생자치회 총연합 회원 15명이 '고이즈미 총리 참배 절대저지' 라는 피켓을 들고 반대 시위를 벌였다. 이들은 "천황의 전쟁책임을 철저히 추궁하라" "전쟁을 미화하는 우익의 교과서를 폐지하라" 고 주장했다. 그러나 일반참배객이나 우익세력과의 충돌은 없었다.

○…고이즈미 총리의 참배에 대해 일반 참배객들은 "만족한다" 는 의견이 많았으나 '15일 참배' 라는 약속을 깼다는 불만도 적잖게 터져나왔다.

제2차 세계대전 중 학병이었던 사토 오사무(佐藤修.75)는 부인인 유리코(百合子.73)와 함께 참배를 마친 뒤 "총리가 15일 참배하기를 희망했으나 여러 사정으로 오늘 앞당겨 온 듯하다" 며 "이만 해도 잘된 일로 본다" 고 말했다.

또 다른 70대 참배객은 "총리가 참배한 데 대해서는 일단 찬성하지만 8월 15일 당당하게 하지 못한 것이 유감" 이라고 불만스럽게 말했다.

도쿄〓오대영.남윤호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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