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위기 재발 막을 장치는 필요…한국, 규제완화로 잠재력 키워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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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을 비롯한 선진국에서 금융규제 강화를 둘러싼 논란이 다시 고조되고 있다. 골드먼삭스가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로부터 사기 혐의로 피소되면서다. 월스트리트저널은 17일 골드먼삭스의 기소는 대형 금융회사에 엄격한 규제를 도입하기 위한 강력한 무기를 민주당에 넘겨준 셈이라고 지적했다. 금융위기 재발을 막으려면 금융규제와 감독을 강화해야 한다는 논리는 선진국에서 공감대를 얻고 있다.

그러나 아직 제대로 커 보지도 못하고, 글로벌 시장에 나선 경험조차 일천한 우리 금융회사들까지 도매금으로 규제 강화 대상에 집어넣는 건 또 다른 문제를 부를 수 있다. 금융규제 강화를 향한 글로벌 레이스에서 우리는 어떤 입장을 견지하면서, 얼마나 속도조절을 해야 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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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차피 축소안정세=작금의 위기가 말끔히 가라앉는다 해도, 또 규제의 족쇄를 더 채우지 않아도, 글로벌 금융은 축소균형의 길을 걷게 될 것이다. 또 향후 예상되는 감독과 규제 때문에 글로벌 금융사들이 ‘체계적으로 위험한’ 거래를 할 여지도 많이 줄어든다.

이런 상황에서 글로벌 금융규제 및 체제개혁에 관한 최근의 논의는 걱정스러운 부분이 있다. 금융위기 재발 방지에 최우선 순위를 둔 나머지, 금융회사들의 자금조달에서부터 대출·투자·보상에 이르기까지 영업활동의 전 단계를 옥죄는 데 비중을 두는 분위기다. 이대로 가면 금융의 위축은 필연적이다. 그 피해는 금융회사뿐 아니라 모든 경제부문이 입게 된다.

◆한국, 규제완화 필요=금융위기가 터지자 글로벌 금융사들은 유동성 위기를 벗어나기 위해 한국에 투자했던 돈을 일시에 빼갔다. 한국이 글로벌 금융위기의 당사자가 아니면서도 심각한 후폭풍에 시달린 이유다.

정부는 은행들의 외화채무를 보증하고, 한국은행은 돈을 넉넉히 풀어 대응했다. 혹시 모를 은행들의 자본부족에 대비해 대규모 자본확충펀드도 조성했다. 이런 조치들은 확실한 효과를 냈다. 한국이 체계적인 위기에 빠져 있었다면 이것만으론 신속히 안정을 되찾기 어려웠을 것이다. 한국은 순간적으로 단순한 유동성 위기(그것도 해외변수에 따른)에 빠져 있었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이번 위기에 거의 모든 책임이 있는 글로벌 금융회사들과는 달리 우리 금융회사들까지 강화된 금융규제의 매를 맞을 이유가 없는 셈이다.

◆실물경제 고려해야=지난 수십 년간 규제의 역사는 분명한 메시지를 전해준다. 금융과 실물경제는 규제완화를 통해 서로 선순환 고리로 연결된다는 점이다.

거꾸로 규제가 심하면 금융산업이 제대로 뿌리내릴 수 없다. 금융산업의 활력이 사라지면 실물경제도 지속적으로 발전하기 어렵다. 실물경제 기반이 탄탄하지 않으면 금융의 국제경쟁력도 공염불이 된다. 선순환과 악순환의 결정적인 갈림길은 규제를 완화하느냐, 강화하느냐의 차이에서 비롯한다는 얘기다.

따라서 우리의 경우 지난 수년간의 규제완화나 시장개방이 너무 앞서 갔다거나, 잘못된 방향이었다고 볼 수는 없다. 그런 지속적인 규제완화가 있었기에 우리의 금융시장이 오늘날 이 정도라도 발전할 수 있었고, 시장 개방이 있었기에 해외자본을 우리의 성장에 활용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부화뇌동 피해야=과도한 규제완화와 느슨한 감독이 이번 위기의 원인이었다 하더라도, 적어도 한국은 규제를 강화하려는 ‘글로벌 유행’을 따를 이유가 없다. 글로벌 규제 강화 레이스에 선두주자로 나설 이유는 더더욱 없다. 금융체제 개혁에 관한 국제적 논의를 봐가면서 우리 금융의 발전에 도움이 되는 것만 취사선택하고 강도조절을 하면 된다.

지금까지 우리 금융당국은 외환유동성이나 예대율 관리를 강화하고, 금융회사의 보상제도를 개선하는 것 이상으로 규제를 강화하지는 않고 있다. 다만 한국은 올해 G20 정상회의 개최국이자 의장국으로서 ‘글로벌 금융규제 개혁’이라는 의제에 국제적 합의를 도출해 내야 할 입장이다. 국내 금융산업에 부담이 되지 않으면서도, 글로벌 금융위기의 재발 방지에 효과적인 금융개혁 의제를 설정하는 것이 과제다.

우리의 경우 오히려 중단 없는 규제 완화로 금융산업의 잠재력을 키워 가는 게 중요하다. 그래야 한국 금융회사도 글로벌 금융 플레이어로 도약할 수 있는 기회를 잡을 수 있다. 또 그래야 우리 금융회사 가운데서도 다자 간 공동 감시의 대상이 될 정도의 ‘30대 다국적 금융사’가 나올 수 있다. 

김정수 경제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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