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 없이 운동 없다 … 경기 전 선수 소개 때 학점도 밝혀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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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2호 16면

인디애나폴리스 파이널 포 현장에 간 추일승 전 KT 감독. 그는 2004년부터 파이널 포를 참관해왔다.

나는 2004년 4월 ‘미국 대학농구 파이널 포’(NCAA Basketball Final Four)를 처음 관전했다. 장소는 샌안토니오였다. 말로만 듣던 미국대학농구의 축제. 입장료는 깜짝 놀랄 만큼 비쌌다. 경기가 벌어지는 플로어 바로 앞자리의 암표 값은 6000달러나 됐다. 나는 흥분했다. 모든 것이 파격적이었고 새롭게 다가왔기 때문이다.

NBA 결승보다 더 인기, 미국 대학농구 ‘파이널 포’

파이널 포는 미국대학농구 토너먼트의 4강 팀이 한 곳에 모여 우승을 가리는 대회다. 이 스포츠 이벤트는 얼마나 인기가 있는지 NBA 결승전보다 TV 시청률이 높다고 한다. 미국대학농구의 인기가 어느 정도인지 TV 중계권료를 보면 알 수 있다.

폭스TV는 미식축구 중계를 위해 2006년부터 2013년까지 8년간 57억6000만 달러를 지불했다. 메이저리그를 중계하기 위해 2007년부터 2013년까지 7년간 18억 달러, 나스카(자동차경주)의 경우 2007년부터 2014년까지 8년간 17억6000만 달러를 냈다. ABC는 내년부터 6년간 NBA를 중계하는 조건으로 46억 달러를 부담했다.

3월 37일(한국시간) 휴스턴에서 벌어진 듀크대와 퍼듀대의 미국대학농구 16강전. 퍼듀대의 키튼 그랜트(왼쪽)가 듀크대 카일 싱글러의 수비를 피해 골밑슛하고 있다. [휴스턴 AP=연합뉴스]

CBS가 가장 비싸게 지불한 중계권료가 남자 대학농구다. 3월에 열리는 ‘파이널 포’는 대학생들의 정열과 패기, 눈물 등이 뒤범벅되면서 졸업생·동문, 그리고 지역 주민들이 함께하는 ‘3월의 광란’으로 유명하다. CBS는 2002∼2003시즌부터 2012∼2013시즌까지 11년간 독점 중계하는 조건으로 60억 달러를 지불했다. 나는 KBL 챔피언 결정전 1차전 해설을 마치고 다음 날 인디애나폴리스로 향했다.

TV 중계권 60억 달러, 가장 비싸
NCAA(National Collegiate Athletic Association)는 ‘대학스포츠위원회’ 정도로 번역할 수 있다. 이 기구의 목적은 대학 간 운동 경기의 원활한 운영을 위한 제도와 규칙 제정에 주도적인 역할을 하기 위해서다. 그러나 더 근본적인 취지는 대학 스포츠의 주인공들인 선수들의 학업 보장과 부상으로부터의 보호에 있다. 이 때문에 이 기구에서 결정한 조항들 중 하나가 시즌이 시작되기 약 두 주 전부터만 팀 훈련을 허용하는 것이다. 선수들은 선수이기 전에 학생이며 그들에게는 훈련보다 수업을 듣는 것이 먼저다. 그러므로 제도적으로 수업권을 보장하는 것이다.

처음 미국대학농구 경기를 보면서 놀란 점이 있다. 경기를 앞두고 선수를 소개하면서 항상 ‘학점’을 선수 이름과 함께 불러 준다. 처음엔 그 숫자가 학점인지 모르고 “이게 선수 등번호도 아니고 도대체 뭐냐”고 물어야 했다. 몇몇 선수는 관중의 야유를 받았는데, 학점이 지나치게 낮은 선수들이었다. 그러나 이 선수들은 그래도 운이 좋은 편이다. 기준 학점에 못 미치는 선수는 아예 경기장에 들어설 수도 없다.

얼마 전 메릴랜드 대학 소속의 최진수 선수가 학점 미달로 경기에 출전할 수 없게 되었다는 뉴스를 국내에서 접한 적이 있다. 우리나라의 운동 정서상 이해할 수 없는 일이지만 그들은 철저히 원칙을 지키고 있다. 그것은 스포츠의 상업화와 승리를 위한 경쟁 구도에서 오염되기 쉬운 대학 스포츠에서 학생들을 보호하며 대학 스포츠를 경험한 선수들의 긍지를 지키기 위해서일 것이다.

파이널 포에 가면 농구 경기 외에 많은 프로그램이 있는데 크게 두 가지로 구분된다. 하나는 코치들을 위한 행사, 하나는 팬들을 위한 행사다. 코치들의 행사에는 NCAA 전체 미팅, 디비전 Ⅰ·Ⅱ·Ⅲ의 개별 미팅 등인데 그 내용은 농구에 관한 것이지만 학생들의 진로와 학업을 고민하는 부문도 있다.

올해에도 학업이 저조한 학생 선수들을 위한 대책, 외국에서 온 학생 선수들을 위한 프로그램 등에 대해 토론하고 발표하는 항목이 있었다. 나는 프로 감독 시절 외국인 선수들과 대화하다가 상당수 미국 대학에서 선수들의 학업을 돕기 위해 학생들에게 선수들의 가정교사를 맡도록 하는 아르바이트를 제공한다는 말을 들었다. 농구만 아는 반쪽짜리 학생을 만들지 않겠다는 의도다.

매년 시즌이 끝나면 콘퍼런스별로 또는 올 아메리칸의 퍼스트 팀, 세컨드 팀 등을 발표한다. 즉 베스트 파이브를 뽑는 것이다. 이때 ‘아카데미 어워드’란 상의 수상자도 함께 발표된다. 학점이 좋은 선수에게 주는 상이다. 운동능력뿐 아니라 학업 성적도 동등하게 평가한다는 것이다.

우리 대학농구는 올해부터 홈 앤드 어웨이라는 제도를 도입해 경기를 한다. 선수들이 수업을 들을 수 있게 해 공부와 운동을 병행하도록 한 것이다. 이 때문에 경기는 오후 5시 이후에 한다. 전국 규모의 대회를 폐지하고 재학생과 함께 교내에서 응원하는 문화를 만들려고 한다. 나는 앞에서 미국 대학스포츠위원회가 고민했던 부분을 우리도 연구해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한국도 주말 홈 앤드 어웨이, 수업 배려
팀 관계자만 이 행사에 참가한다면 성공하기 어렵다. 학교와 행정 팀 지도자 모두가 참가해 뿌리가 잘 내리도록 노력해야 한다. 학생들은 학업 성취도를 높이고 학교는 부족한 학생들을 도울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지도자는 제한된 시간을 효율적으로 활용해 팀의 수준을 높일 수 있도록 부단히 노력하고, 대학연맹은 이 제도의 정착을 위해 엄격히 관리하는 한편 대학농구의 붐 조성을 위해 상업적 마케팅에도 힘쓸 필요가 있다.

이번 파이널 포에서 ‘코치들의 코치’로 불리는 곤자가 대학의 제리 크라우제 박사를 만났다. 그는 곤자가 대학의 농구 행정을 책임지고 있다. 크라우제 박사는 농구선수들에게 농구 훈련에 대한 학점을 준다고 한다. 훈련에 임하는 태도와 자세 등을 평가해 학점을 부여하는데 선수들이 농구를 학교 수업의 일부로 생각해 더욱 진지하게 참여한다고 한다. 크라우제 박사는 “지도자들은 선수들의 삶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어야 한다. 선수들의 인생이 농구보다 더 중요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귀담아들을 말이다. 나는 농구 지도자로서 우리 대학농구도 NCAA의 경우를 참고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선수들에게 농구는 인생의 유일한 목적이 아니며 최소한 대학 생활에서만큼은 과정으로 생각하게 해야 한다. 올해 우승한 듀크 대학의 마이크 슈셉스키 감독은 미디어와의 인터뷰에서 듀크대 농구장인 카메룬 체육관에 대해 “인생의 깨우침을 느끼는 장소”라고 표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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