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치마를 던져라 … 여자 마라도나를 꿈꾸는 아줌마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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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희 엄마! 패스~”

녹색 그라운드 위에 ‘엄마’들이 떴다. 호리호리하거나 가냘픈 몸매는 아니지만 잔디 구장을 누비는 모습이 나름 날렵하다. 지난 10일 천안시 동남구 성정동 천안축구센터에서 만난 이들은 고된 훈련에 구슬땀을 흘리고 있었다. 코치의 구령에 맞춘 순발력 테스트와 ‘고깔’을 세워놓고 드리블을 하는 모습이 프로축구선수의 모습을 연상케 했다.

감독과 코치 등 운영진이 재밌고 유쾌한 훈련방법을 개발해 효율적인 연습을 시키기도 한다. 이날 그라운드에선 체력과 순발력을 보강하기 위해 만든 게임이 진행됐다. 아줌마들의 얼굴에선 미소가 가시질 않았다.

천안흥타령여성축구단 회원들이 훈련에 앞서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이들은 축구가 친목도모는 물론 가정 문제 해결사 노릇을 한다고 자랑한다. [조영회 기자]

창단 6개월 만에 회원 수 2배

지난해 9월 창단한 천안시흥타령여성축구단. 창단 당시 17명이었던 회원이 지금은 두 배 가까운 32명으로 늘었다. 축구는 좋아하지만 몸이 안 따라주는(?) 이들이 응원과 홍보를 맡고 있다. 현재 19명의 선수가 22명까지 늘었고, 총 회원 수를 50명까지 늘릴 계획이다.

대학 때까지 축구선수로 활약을 했던 양희열(38)씨가 감독을 맡고 있다. 지금은 회사원 신분인 그가 아줌마들의 운동을 돕기 위해 그라운드로 나선 것이다. 충남도 대표 선수 당시 유동석 축구연합회장과의 인연이 계기가 돼 축구 지도자 생활을 시작했다고 한다.

30여 년 세대차이 ‘훌훌’

배금숙(18번)씨와 정인숙(8번)씨가 드리블 연습을 하고 있다.

훈련을 마치고 잠시 휴식시간을 가졌다. 이야기 꽃의 향기가 그라운드를 메웠다. 팀 창단 직후 열린 ‘충남어머니체육대회’가 첫 화두였다. 6개 팀 중 3위를 기록했다고 했다.

“1개 팀이 기권하고 5개 팀 중 3위를 했어요. 신생팀이 2개 팀이나 이겼으니 잘한 것 아닌가요?” 이미영(44) 회장의 농담섞인 멘트에 운동장이 웃음바다가 됐다. 천안시생활체육협회에서 ‘여성 축구 활성화’라는 명분에 등 떠밀려 시작했지만 지금은 더욱 열정적이다.

이들은 축구로 세대차이를 극복하고, 공감대를 만든다. 52세의 박종원씨부터 막내인 차자연(24)씨, 30여 년의 세월을 축구로 이겨낸다.

차씨는 흥타령 축구단의 유일한 미혼 회원이다. 차씨는 “어릴 적부터 축구를 좋아해 인터넷 홈페이지 뒤적거리다 회원으로 가입했다”고 했다.

“이전에도 축구를 했었는데, 팀 운영이 흐지부지 돼 한동안 운동을 하지 못해 아쉬웠어요. 지금은 새로 만들어진 팀에서 열심히 운동을 하면서 친목을 챙기고 있답니다.” 골키퍼를 맡고 있는 황지나(38)씨의 얘기다. 아내의 운동을 적극 반겨 연습 때마다 차로 데려다 주는 남편도 있고, 아이들도 엄마의 축구생활에 적극적이란다.

‘축구’가 가정문제 해결사

‘축구모임’이 가정 해결사 노릇도 한다. 아줌마들이 서로의 고민을 털어놓고 해결방법을 함께 찾아본다. 최근 한 회원은 남편의 ‘술’을 고민거리로 내놨다. ‘술을 거르는 날이 없는 남편의 생활을 어떻게 하면 바꿀 수 있을까.’ 정공법을 써서 바가지만 긁었더니 오히려 다툼만 심해졌단다. 머리를 맞댄 회원들은 회유책(?)을 대안으로 내놨다. 매일 술을 마시는 남편에게 ‘그냥 마시게 두라’는게 대책이었다. 결과는 성공이었다.

“남편이 조금 있으면 금주 100일이에요. 축구팀이 남편의 금주를 성공시킨 것이죠.” 이 회원은 남편이 기분 나빠할지 모르니 자신의 이름은 비밀로 해 달란다.

“사회에서 만난 모임 중 가장 많이 웃는 모임”이라고 회원들 모두 입을 모은다. “‘보는 것만도 즐거운 축구가 직접 하면 골밀도를 높여주고 노인에게는 낙상이나 골절을 예방해주는 등 건강에 이로운 효과가 많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고 예찬론을 펴기도 했다.

이들은 한 달에 한번 둘째 주 토요일마다 소주한잔 기울이며 못 다한 이야기를 나누고 회포도 푼다.

이들을 만난 지난 10일 오후, 구름 낀 하늘에 빗방울도 조금씩 지나다녔지만 이들의 열정까지 막진 못했다.

▶문의=041-561-7727

글=김정규 기자
사진=조영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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