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 있는 아침] '마음 무거울 때' 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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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지금 이 세상 어느 곳에서 울고 있는 그 사람은,

까닭도 없이 이 세상에서 울고 있는데,

나를 우는 것이다.

지금 이 세상 어느 곳에서 웃고 있는 그 사람은,

까닭도 없이 이 세상에서 웃고 있는데,

나를 웃는 것이다.

지금 이 세상 어느 곳에서 거닐고 있는 그 사람은,

까닭도 없이 이 세상에서 거닐고 있는데,

나에게로 오는 것이다.

- 라이너 마리아 릴케(1875~1926) '마음 무거울 때' 중

이 시를 읽고 아무런 감흥이 없다면 당신은 이미 늙어버린 것이다. 언어의 뛰어난 연금술사이자 이 겸허한 '비가(悲歌)' 의 시인은 말한다.

"지금 이 세상 어느 곳에서 죽어가는 그 사람은" 나를 바라보고 있는 중이라고. 이 어찌 아름답지 않은가.

이시영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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