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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왜 미국을 잘못 읽었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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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유럽 언론은 이번 미국 대선에서 헛다리를 짚었다. 대부분의 유럽 언론은 존 케리 민주당 후보가 조지 W 부시 대통령을 제칠 것으로 점쳤다. 왜 유럽 언론들이 틀렸을까.

가장 큰 이유는 유럽이 잘못된 채널을 통해 미국을 읽었기 때문이다. 짐작건대 워싱턴에 파견된 유럽과 아시아 언론의 특파원들은 뉴욕 타임스를 모범답안으로 해서 미 대선 기사를 본국에 보냈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베를린.파리.브뤼셀 언론인도 뉴욕 타임스가 소유한 인터내셔널 헤럴드 트리뷴(IHT)을 열심히 읽었다. 문제는 타임스가 사설에만 국한해 반(反)부시 입장을 표명한 것이 아니라 뉴스에도 은근슬쩍 반영했다는 점이다. 그 때문에 필자를 포함한 외국인들이 잘못 짚게 됐다. 미국인 대다수가 부시를 텍사스 목장으로, 케리를 백악관으로 보내기를 고대하고 있다는 것으로.

유럽은 또 케리에 대해서도 오해하고 있었다. 유럽인들은 케리를 코피 아난 유엔 사무총장과 자크 시라크 프랑스 대통령의 혼합물 정도로 여겼다. 물론 케리가 프랑스어를 유창하게 구사하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과연 케리가 당선됐더라면 미국의 외교안보 정책이 180도 달라졌을까. 나의 대답은 '노'다. 케리의 정책은 부시와 크게 다르지 않다. 케리가 선거유세 도중 설파한 이라크 해법은 부시와 대동소이했다. 케리는 유세 도중 이슬람 테러리스트 문제가 나오자 이를 악문 채 "그놈들을 죽여버리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또 지구 온난화 방지를 위한 교토(京都) 협약과 국제형사재판소(ICC) 문제만 하더라도 이를 철회한 것은 클린턴 행정부 시절 민주당이었다. 따라서 케리가 승리했더라도 미국 외교의 변화는 외교 스타일의 변화에 국한됐을 것이다.

문제의 핵심은 부시와 케리의 성격 차이가 아니라 미국의 힘과 외부 위협에 대한 평가다. 미국은 명실상부한 세계 유일의 초강대국이다. 반면 유럽과 일본은 국제무대에서 강대국이며 한국은 독자적인 군사행동이 힘든 중진국가다. 이런 국력 차이는 국제문제에 대한 인식, 접근방식, 해결책을 차별화하도록 만드는 기본요인이다. 예를 들어 유럽 국가들은 맘먹기에 따라 테러와의 전쟁에서 손을 떼고 무대 중앙에서 비켜서 한구석에서 조용히 있을 수 있다. 그러나 미국은 그럴 수 없다. 또 미국은 자신이 빈 라덴의 핵심 타깃이라고 생각한다.

유럽은 즐겨 '다자주의'로 문제를 해결하자고 주장한다. 그러나 미국은 우방의 도움 없이도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게다가 '여럿이 손잡고 문제를 해결하자'는 다자주의는 종종 약자의 무기이기도 하다. 바로 이 때문에 미국은 다자주의를 망설인다.

유럽이 미국을 잘못 읽은 것은 또 있다. '공화당=부자당'이고 '민주당=빈자당(貧者黨)'이라는 고정관념이다. 그러나 미국의 민주.공화 양당의 지지계층은 지난 수십년간 크게 변했다. 현재 공화당은 기독교를 배경으로 한 중.하층을 확보하고 있다. 반면 민주당은 조지 소로스.스티븐 스필버그로 상징되는 고학력.전문직.부유 계층을 주요 고객으로 갖고 있다.

결론적으로 민주당과 뉴욕 타임스로 상징되는 미국의 엘리트들은 미국을 잘못 읽고 있었다. 미국의 주류는 신앙심과 애국심으로 똘똘 뭉친 중서부의 풀뿌리 미국인들이다. 그러나 유럽적 시각을 가진 민주당과 뉴욕 타임스의 엘리트들은 이들과 눈높이를 맞추는 데 실패했다. 민주당은 기존의 현학적이고 관념적인 자세에서 탈피해 풀뿌리 미국인들에게 다가서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언론도 반성할 것이 있다. 언론은 자신의 입맛에 맞는 기사만 내보내서는 안 된다는 것. 또 이라크전 같은 이슈에 대한 견해와 의견은 뉴스가 아닌 사설로 독자에게 전달하라는 것이다.

요제프 요페 독일 디 차이트 발행인
정리=최원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