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아이] 할 말은 하겠다는 중국의 표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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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8면

12일 정상회담에서 후진타오(胡錦濤) 중국 국가주석과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활짝 웃는 사진을 보면서 표변이란 말이 떠올랐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먹잇감을 앞에 둔 맹수들처럼 서로 으르렁거리던 모습이 갑자기 달라보여서다.

“대화 분위기가 화기애애했다”는 대변인의 설명과 달리 두 정상의 입장은 팽팽하게 맞섰다. 특히 환율 문제가 그랬다. 심지어 후 주석은 “(위안화 절상을 요구하는) 외부의 압력에 굴복하지 않겠다”며 외교적 수사를 배제한 화법까지 동원했다. 1979년 수교 이후 30여 년간 양국 관계를 미국이 주도해온 사실에 비춰보면 중국 최고 지도자의 이런 완고한 태도는 미·중의 위상 변화를 실감하게 한다.

미국 하버드 대학 교수였던 존 K 페어뱅크(1907~91년)는 중국을 연구한 미국의 1세대 권위자다. 그는 미·중 관계를 ‘미국의 자극과 중국의 반응 모델’이란 틀로 분석한 것으로 유명하다. 근대화되고 동태적인 미국을 주체로 설정하고, 내재적 발전 동력이 결핍된 중국을 객체로 상정했다. 미국의 자극에 반응하는 과정에서 중국의 발전이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제2차 세계대전 때 중앙정보국(CIA)의 전신이었던 전략정보국(OSS) 요원으로 충칭(重慶)에 파견돼 활동한 이력이 있는 페어뱅크의 편향된 시각은 훗날 학계의 비판을 받았다. 그렇지만 미국 정부의 중국 접근법을 보면 페어뱅크 시대의 낡은 틀이 여전히 사용되는 듯하다. 올 초 미국이 중국의 만류에도 대만에 무기를 판매하고, 오바마 대통령이 달라이 라마 면담을 강행한 사례가 그런 경우 아닐까.

그러나 과거와 분명하게 달라진 것은 자극을 받아들이는 중국의 태도다. 중국은 핵심 국익에 직결된 주권·영토 문제를 미국이 건드리자 불쾌감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그건 안 돼”라고 공개적으로 소리치는 중국의 화난 얼굴은 과거에 볼 수 없었던 낯선 광경이다. 집요하게 물고늘어진 중국은 결국 대만과 티베트 문제에서 미국의 양보를 받아냈다. 이런 변화는 미국에서 촉발된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에 두드러진 양상이다. 중국은 수동적 객체에서 벗어나 미국 주도의 일방주의와 경제 질서를 비판했다. 내심을 잘 드러내지 않았던 이전과는 달라진 모습이다. 곳간이 가득 차고 주머니가 불룩해지면서 가능해진 변화다.

과거의 중국이 진시황 병마용의 토용(土俑)처럼 무표정했다면, 앞으로의 중국은 변검처럼 수시로 얼굴을 바꿀 것이다. 표변한 중국의 맨 얼굴을 더 자주 대면해야 할 외부 세계는 어떻게 중국을 상대해야 할까.

장세정 베이징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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