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논단] GM식품 규제를 강화하려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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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가 최근 유전자변형(GM)식품에 대한 규제를 강화한다는 방침을 정했다. GM 식품 및 사료에 대해 성분을 추적할 수 있는 장치까지 마련한다는 것이다. 유럽은 미국 등 다른 나라와 마찬가지로 이미 GM 관련 제품에 대해 그 사실을 포장지에 의무적으로 표시토록 하는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이번 조치를 추진 중인 EU는 두가지 목표를 겨냥하고 있다. 우선 유럽 내 소비자들을 안심시키겠다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유럽이 GM 식품을 지나치게 꺼린다는 미국의 관련 농가와 생명공학 회사들을 달래려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GM 작물은 일반적으로 해충에 강하고 수확량도 많으며 영양도 풍부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환경적인 측면을 보면 위험요소를 배제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 시장에서 유통되고 있는 GM 농산물과 관련 식품이 인체에 해롭다는 증거는 아직 없다.

이런 가운데 유럽 소비자들은 유전자변형 기술에 대해 상당히 불안해 하고 있다. 이같은 의심은 환경운동가들과 일부 언론에 의해 부추겨진 측면이 없지 않다. 식품안전성을 침해한 것은 광우병.구제역.다이옥신 오염 같은 것이지 GM 식품 자체는 아니다.

GM 식품에 대한 불신에는 정치가들의 입김이 작용한 소지도 없지 않다. 정치가들은 GM 식품의 문제점을 부각시켰을 뿐 이를 진정시키려 한 이들은 거의 없었다. GM 농산물의 유해성이 입증되지 않았다고 해도 어떤 정부가 정치인들의 이같은 우려를 무시할 수 있겠는가. 그래서 EU는 규제를 강화하고 GM 작물과 식품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그 경로를 추적하려는 것이다.

EU 집행위는 소비자들의 권리를 보호하고 자유무역 규정도 준수한다는 모순을 조화시키려고 애써 왔다. 집행위는 식품에 GM 성분이 우연히 포함됐을 경우 1%까지는 허용한다는 방침을 이번에 정했다.

그러나 모든 식품에 1% 미만 여부를 일일이 검사하기란 결코 간단한 일이 아니다. 검사기술이 충분히 발달할 때까지 이같은 표시제를 추진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현재로서는 GM 식품의 모든 경로를 추적하는 작업도 아주 어려운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집행위는 강화된 제도가 시행되면 EU 회원국 정부들이 GM 작물이나 식품 수입을 막는 조치를 해제하기를 바라고 있다.

GM 작물 생산자들에게 내세우는 명분도 그것이다. 표시제를 완벽하게 시행하면 무역장벽은 오히려 낮아질 것이라는 논리다. 하지만 이같은 판단은 지나치게 낙관적인 것으로 비춰진다. EU 당국이 세계무역기구(WTO) 규정을 준수한다고 할지라도 시행과정에서 무역장벽으로 사용될 가능성은 여전히 크다.

소비자들이 스스로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점만은 분명하다. GM 작물이 위험하다는 지적이 감정적이냐, 이성적이냐 하는 것은 차치하고라도 선택의 문제만큼은 소비자들의 권리이기 때문이다.

소비자들이 선택할 권리를 갖게 되면 소비자들은 GM 식품의 이점과 위험에 대해 더 관심을 갖게 될 것이다. 이런 차원에서 보면 의무표시제는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러나 EU 집행위가 앞서 언급한 식으로 규제를 강화하려면 먼저 투명하고 책임있는 방식으로 식품안전성을 규명할 능력부터 갖춰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소비자들로부터 신뢰를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다.

파이낸셜 타임스 7월 27일자 사설

정리=홍수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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