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알버스 '무한 질주' 지적 제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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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버스나 화물차량들의 과속 등을 자동 감시하는 차량 내 '운행기록계(타코그래프)' 가 사실상 유명무실하게 운영되고 있어 과속.난폭운전을 부추기고 있다.

기록계의 설치.운영을 의무화한 도로교통법의 관련 조항이 1999년 폐지되면서부터다.

특히 지난 24, 25일 경남 진주와 경기도 성남에서 잇따라 대형사고를 낸 관광버스들이 운행기록계를 제대로 작동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나 대책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운행기록계는 주행 속도 등이 기록돼 운전자의 과속 여부 등을 알 수 있도록 한 장치다.

그러나 현재 이를 규정하고 있는 자동차관리법은 '운송사업용 차량은 운행기록계를 반드시 장착해야 한다' 고만 돼있을 뿐 위반시 처벌조항이나 운영.관리 부분은 명문화돼 있지 않아 사실상 제 기능을 못하고 있다.

◇ 운행기록 없이 질주하는 관광버스=진주와 성남에서 이틀 연속 추락사고를 낸 관광버스들의 경우 운행기록계는 장착돼 있었지만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던 것으로 밝혀졌다. 때문에 이들 버스의 과속여부는 운전자나 승객들의 진술에만 의존하게 됐다.

관광버스업계 관계자는 "대부분 기록계는 장착하지만 기록지를 넣어 일일이 주행상황을 기록하지는 않는다" 며 "그러다 보니 과속에 신경을 덜 쓰게 된다" 고 털어놓았다.

D고속버스 기사 朴모(45)씨는 "관광버스들이 고속도로에서 시속 1백40㎞ 이상 질주하는 건 대부분 운행기록계가 작동하지 않기 때문" 이라며 "제대로 작동한다면 그렇게 과속할 수 있겠느냐" 고 지적했다.

◇ 2년째 사라진 운영규정=도로교통법에는 '모든 사업용차량은 운행기록계를 반드시 사용해야 하고 기록지를 1년간 보관해야 한다' 는 규정이 있었다.

어기면 형사처벌(6개월 이하 징역 또는 50만원 이하 벌금)을 받았고, 운행정지 등의 행정처분도 뒤따랐다.

그러나 99년 규제개혁위가 이를 삭제하고, 이의 장착만을 의무화한 자동차관리법 시행규칙 56조만으로 대신하도록 했다. 이 규칙에는 그러나 기록지의 삽입 등 실제 운영에 관한 규정이 아직까지 마련되지 않은 상태다.

운행기록계의 관리를 허술히 해도 단속이나 처벌을 할 수 없게 된 것이다.

◇ 뒤늦은 개선 움직임=이에 대한 비난여론이 높자 총리실 안전관리개선기획단.건설교통부 교통안전과는 다시 운행기록계에 대한 규제 강화를 논의 중이다.

교통안전공단의 이환승 교통안전진단부장은 "운행기록계의 설치뿐 아니라 정상적으로 작동시켜야 한다는 의무조항을 넣어야 한다" 고 말했다.

◇ 운행기록계란=운송사업용 자동차와 8t이상 화물트럭, 고압가스 등 위험물 운반 탱크차량 등에 장착하도록 한 장치. 대부분 차량의 계기판 안쪽에 설치돼 있으며, 기록지를 넣으면 자동으로 주행속도 등이 기록되는 '자동차의 블랙박스' 다.

이를 통해 운전자의 과속이나 교통신호 준수 여부 등을 점검할 수 있어 사고발생시 원인 분석자료로 활용된다.

정현목.정효식.남궁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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