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레이엄 사후 WP호] '캐서린 정신' 죽지않아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9면

"캐서린 그레이엄이 없는 세상은 전같지 않을 것이다. "

고(故)그레이엄 워싱턴 포스트 명예회장의 영결식이 열린 지난 23일자 워싱턴 포스트에 실린 이 회사 전.현직 임직원 명의의 전면광고 내용이다.

그렇다면 그레이엄 여사가 빠진 'WP호(號)' 는 과연 어디로 갈 것인가.

광고 내용대로 우려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가 생전에 이미 WP호의 방향타를 장남 도널드 그레이엄(56)에게 넘겼기 때문에 별 무리가 없을 것이란 관측이 우세하다. 그레이엄 여사는 장남을 일찌감치 후계자로 점찍고 1971년부터 혹독한 경영수업을 시켰다.

따라서 워싱턴 포스트 등 '워싱턴 포스트 컴퍼니' 는 복잡한 미디어 환경에 잘 적응하면 순항을 계속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후계자인 돈(도널드의 애칭)그레이엄 회장은 하버드대에서 교내신문 '하버드 크림슨' 의 대표를 지냈다. 졸업 후에는 월남전 참전과 워싱턴시 경찰근무를 거쳐 71년 워싱턴 포스트에 기자로 입사했다.

그는 편집국을 비롯해 조판.공무.판매.광고.인쇄 등 신문사의 각 분야를 밑바닥부터 경험한 뒤 76년 부사장에 선임됐다. 79년 어머니에게서 워싱턴 포스트 발행인 직책을 넘겨받아 신문제작의 총책임을 맡았고, 91년엔 언론기업 '워싱턴 포스트 컴퍼니' 의 최고경영자(CEO)자리에 올랐다.

그는 93년엔 모친이 후견인 격으로 갖고 있던 이사회 의장 직함마저 넘겨받아 명실공히 워싱턴 포스트의 경영 전반에 걸쳐 전권을 행사하기 시작했다. 그레이엄 여사가 20년 이상 신문사에서 잔뼈가 굵은 아들에게 포스트를 물려주고 경영일선에서 물러난 것이다.

오늘날 워싱턴 포스트 컴퍼니는 단순한 신문기업이 아니라 거대 미디어 그룹이다.

지난해의 경우 매출액이 24억달러(약 3조1천2백억원)가 넘었다.

간판신문인 워싱턴 포스트 외에 워싱턴 주와 메릴랜드 주에서 별도의 신문을 발행하고 있다. 또 6개 지방 TV방송국과 19개 주에 영업망을 가진 케이블 네트워크, 뉴스위크를 비롯한 잡지군, 교육 자회사 '카플란' 과 인터넷 자회사 WPNI 등을 소유하고 있다.

워싱턴 포스트 컴퍼니는 스스로 '고도로 다각화된 미디어 기업' 이라 규정하고 있다. 그레이엄 여사가 생전에 늘 말했듯이 '재정적으로 자립할 수 있는 언론사만이 바른 말을 할 수 있다' 는 언론사 경영관을 그대로 실천한 결과다.

도널드 그레이엄 회장은 90년대 후반부터 분야별 자회사 대표에 하버드대 출신 젊은 경영인을 발탁해 친정체제를 강화해 왔다.

지난해 9월엔 하버드 출신으로 평생친구인 보 존스 사장에게 워싱턴 포스트의 발행인 겸 CEO 직책을 맡겼다. 포스트의 발행인을 그레이엄 가문 외의 인물이 맡은 것은 30년 만의 일이었다. 이후 도널드 자신은 회장으로서 그룹 전반의 경영을 관장해오고 있다.

워싱턴 포스트 컴퍼니는 71년 주식을 공개해 뉴욕 주식시장에 상장됐으나 경영권만은 철저하게 가족 소유를 고집하는 개인기업으로 남아 있다. 이는 미국에선 의결권 없는 주식만 공개하고, 경영에 간여할 수 있는 의결권 있는 주식은 개인이 갖더라도 상장을 허용하기 때문에 가능하다.

도널드 그레이엄 회장은 "어머니는 생전에 '외부의 압력에 굴하지 않고 장기적 안목으로 신문을 운영할 수 있는 것이 가족 소유 신문기업의 강점' 이라고 말씀하시곤 했다" 고 회고했다. 그는 "(워싱턴 포스트는)가족 소유의 전통을 이어갈 것" 이라고 강조했다.

워싱턴=김종수 특파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