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 시평] 받는 것이 익숙한 사람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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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얼마 전 신입사원을 뽑기 위해 면접을 한 적이 있었다. 그 사람은 당시 공적자금이 엄청나게 들어간 회사를 다니고 있었다. 면접 도중에 나는 회사가 부도가 난 상태여서 월급은 제대로 나오냐고 근심하는 표정으로 물었다. 그는 질문이 너무나 재미있다는 표정을 하더니 "월급이요?

보너스도 나오는데요" 라고 대답했다. 질문을 한 사람을 무색하게 하는 대답이었다. 부도난 회사, 공적자금이 수조원이나 들어간 회사에서 국민의 세금으로 보너스를 받는 것을 너무나 당연하다는 듯이 대답하는 그 사람의 태도도 놀라웠다.

*** 부도난 회사라도 보너스

삼십대 초반의 한국인 친구가 새 집으로 이사를 해서 집들이 초대를 했다. 강남의 한 아파트였는데 침실이 세 개가 있는 좋은 아파트였다.

그 친구는 넓은 집으로 이사하면서 인테리어 공사를 새로 하고 가구나 가전제품도 많이 바꿔 아주 행복한 모습이었고 초대된 우리 부부에게 자랑스럽게 설명했다. 저녁 식사를 하면서 전업주부인 나의 아내는 인테리어를 어디서 했는지 얼마가 들었는지 등등을 관심 있게 물어보기 시작했다.

저녁 식사를 마칠 무렵 우리 부부는 그가 집을 늘려 가는데 얼마가 더 들었고 실내 장식과 새로운 가구를 들여놓는데 총 얼마를 썼는지를 상세히 알게 되었다. 그 돈은 우리 가족이 십년 이상 알뜰살뜰 모아야 하는 아주 거금이었다. 나는 그와 수년 동안 친하게 지내왔기 때문에 그의 직장, 연봉의 대략적 수준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이 친구는 평소에 자신의 라이프 스타일을 유지하기 위해 늘 부모로부터 일정액의 용돈을 타서 쓰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부부는 들어간 돈의 크기와 그 많은 돈의 대부분을 양가 부모에게서 받은 사실에 너무 놀랐다.

그리고 더 더욱 놀라운 것은 양쪽 부모에게 그런 도움을 받은 것을, 그런 능력 있는 부모를 둔 것을 자랑스럽다는 듯이 말한다는 사실이었다.

위의 두 가지는 공통된 점이 있다. 즉, 받는 것에 대한 익숙함과 자연스러움이다. 가정에서의 과잉 사랑에 익숙해져서 사회에서도 남의 것을 받아 쓰는 것에 당당해져 있다고 결론지으면 외국인이 한국인을 비판적으로 생각하기 위해 억지로 두 사실을 연결해 생각했다고 비난 당할까?부모가 돈이 많아서 자기 자식에게 용돈을 많이 주는데 뭐가 잘못 되었냐고 물으면 할 말이 없다.

부도난 회사라도 직원들이 사기 충천해야 열심히 일하는데 보너스 주는 것이 당연하지 않느냐고 물으면 정말 말문이 막힌다. 설령 그 돈이 국민의 세금으로 계속 메워진다 할지라도….

받는 것에만 익숙해지면 게으른 사회가 돼 버린다. 열심히 노력하고 땀 흘려 얻는 즐거움을 모른다. 공짜로 누군가가 자꾸 주는데 왜 살을 깎는 노력을 하겠는가? 회사가 부도가 나도 누군가가 자꾸 자금을 공급해 주는데 왜 동료를 실업으로 몰아내는 구조조정을 하겠는가? 어차피 세금이란 결국 주인 없는 돈이나 마찬가지고 그리고 회사도 언제까지 갈지 모르는데 월급을 적게 받을 필요가 있겠는가? 적당히 살아도 처가 혹은 시댁에서 용돈뿐 아니라 집 장만도 해 주는데 왜 알뜰살뜰 저축하며 살겠는가?

*** 부모 지원까지 자랑하나

받는 것에만 익숙해지면 노력하는 것이 힘들고 귀찮아져서 게을러지며 긍극적으로는 경쟁력이 없어진다. 개인의 게으름은 사회나 국가 전체로 이어져 국가의 경쟁력이 떨어지게 된다. 한국은 글로벌 경쟁 시대에서 주변국들의 엄청난 도전을 맞고 있다. 웬만한 노동 집약적 사업은 모두 중국이나 다른 나라로 이전된 지 오래고 일본처럼 원천 기술이나 고부가가치 산업도 많지 않다. 자원은 더 더욱 없다.

1960~70년대의 한국은 가난을 떨쳐버리기 위해 모든 국민이 땀 흘려 일했다. 그래서 오늘의 한국을 만들어냈다.

지금의 한국인은 미래를 위해 어떤 준비와 노력을 하고 있는가□ 지금 나는 열심히 땀 흘려 일하는 대신 누군가가 내게 부를 거저 주길 바라지는 않는가□ 혹은 국가가 더 많은 공적자금을 나에게 베풀도록 요구하고 있지는 않은가?

"국가가 여러분을 위해 무엇을 해줄 수 있는지를 묻지 말고, 여러분이 국가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자문해 보라" 는 케네디 대통령의 말이 갑자기 떠오르는 것은 내가 미국인이기 때문일까?

웨인 첨리(다임러크라이슬러 코리아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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