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가와티의 인도네시아] 上. "이젠 치유와 건설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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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인도네시아 바루(새 인도네시아)' 의 첫날이 열렸다.

조용하면서도 단호한 '철의 여인' 메가와티 수카르노푸트리는 24일 자신의 사저(私邸)에서 인도네시아 대통령으로서 첫 집무를 시작했다.

24일 오전 '인도네시아 1' 번호판을 단 대통령 전용차에서 내려선 메가와티 대통령은 "이제는 치유와 건설에 나서야 할 때" 라고 선언했다. "고민하기에는 시간이 너무 아깝다" 는 말도 덧붙였다.

메가와티를 30년간 주변에서 지켜봐온 수바기오 아남(63)정치담당 고문이 24일 본사 취재진과 만난 자리에서 "메가와티는 얼핏 보면 수동적이다. 말도 아낀다.

그러나 그녀는 매우 적극적이고 때로는 공격적이다. 일단 목표를 정하면 꼿꼿이 달려가는 모습, 이것이 메가와티의 진짜 모습이다. 우리는 이제 인도네시아 국부의 딸이 분열된 인도네시아를 다시 일으켜 세우는 역사를 보게 될 것" 이라고 말했다.

사실 메가와티는 '준비된 대통령' 이다. 1백85명에 달하는 부통령궁 직원들은 약 한달 전부터 부통령궁을 사실상의 대통령궁으로 단장하기 위한 작업에 들어갔다.

정부조직표.정당기구표.주요국영공사 인사파일.경제현안 자료.국제통화기금(IMF) 협상자료 등 통치를 위한 핵심자료들이 차곡차곡 정리됐다. 남편 타우픽 키에마는 최근 워싱턴 정가를 돌고 돌아왔다. 집권을 위한 사전 정지작업이었다.

군과 경찰도 조용히 장악했다. 메가와티는 결코 드러나지 않게, 그러나 매우 공격적으로 군.경찰 수뇌들과 꾸준히 접촉해왔다.

한 군 장성은 "그녀와 얘기하면 할수록 따뜻한 신뢰가 쌓이는 걸 느꼈다" 고 회고했다. 이렇게 장악한 군과 경찰은 결정적인 순간에 메가와티의 집권을 도운 일등 공신이 됐다.

이제 관심은 메가와티가 조각난 나라와 거덜난 경제를 위해 어떤 처방을 내놓을 것인가로 모아지고 있다.

일단 출발은 좋은 편이다. 주식시장은 안정된 모습을 보이고 있고 IMF도 기대를 보이고 있다.

그러나 메가와티는 단순한 인기가 아니라 정책으로서 신뢰를 얻어야만 한다.

그래야 지난해 12월부터 연기된 4억달러의 IMF 지원금이 풀릴 것이며 인도네시아 경제회복에 결정적 역할을 할 일본을 비롯한 외국기업들의 불안감도 해소될 것이다.

메가와티는 하버드 법대 출신인 밤방 케소워를 경제실무팀의 총책으로 임명해 이들에게 국내 경제계는 물론 국제사회에 선보일 경제계획표를 마련하라는 임무를 부여했다.

현재 자카르타의 많은 사람들은 낙관론을 펴고 있다. 메가와티가 당과 부통령궁을 효율성과 규모의 상징으로 키운 것에서 알 수 있듯 능력이 와히드보다 나을 것이란 기대때문이다.

뿐만 아니다. 경제개혁은 물론 '정당한 절차' 와 '법치' 에 대해 메가와티는 일관성 있는 태도를 보였다. 그러나 다른 모든 것보다 중요한 것은 메가와티의 각오다.

아남 고문은 "메가와티는 아버지가 세운 나라를 딸이 부활시켜야 한다는 소명의식을 갖고 있다" 고 말한다. '인도네시아 바루' 에 기대를 거는 시민들이 늘고 있는 것도 우연은 아니다.

자카르타=진세근.장세정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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