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 결혼 안식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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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싸움터에 나갈 때는 한번 기도하고, 바다에 갈 때는 두번 기도하라. 그리고 결혼할 때는 세번 기도하라. " 결혼생활의 거친 파도를 일깨워주는 러시아 속담이다.

그런 만큼 아무리 신중해도 지나치지 않은 것이 결혼이라는 충고가 담겨 있다. 결혼을 새장에 비유한 사람은 프랑스 철학자 몽테뉴였다. 새장에 갇힌 새는 자유롭게 비상(飛翔)할 수 있는 하늘을 그리워한다. 뒤집어 보면 함부로 새장 속에 들어가서 후회하는 일이 없도록 신중할 것을 강조한 말이다.

정녕 결혼은 한번 들어가면 빠져나오기 힘든 새장 속의 구속이며 창살 없는 속박일까. 혼인을 알리는 교회 종소리를 자유의 조종(弔鐘)으로 여기는 일부 남성이나 가부장적 질서가 온존하고 있다고 믿는 일부 여성에게는 그럴지 모르겠다.

'제2의 성(性)' 을 쓴 프랑스 여류작가 시몬 드 보부아르가 말한 대로 '시지프스의 형벌' 로 결혼생활을 받아들인다면 더욱 그럴 것이다. 애써 바위를 산 꼭대기까지 밀어올려 보지만 정상에 도달하는 순간 바위는 다시 아래로 굴러 떨어지고 만다.

미국의 중년부인들 사이에 '결혼안식년' 이 유행이라는 소식이다. 물론 아직 일부 계층의 얘기지만 내조와 양육의 부담에서 벗어나 짧게는 1~2개월, 길게는 1년씩 자기만의 시간을 갖는 40~50대 여성들이 늘고 있다는 것이다. 남편과 자식들과 떨어져 평소 하고 싶었던 것을 마음껏 해보거나 머물고 싶었던 곳에 가서 새장 속에서 억눌렸던 자아를 회복하는 시간을 갖는 중년여성들이 많아지고 있다는 얘기다.

결혼안식년을 이용해 히말라야 등정에 나선 여성도 있고, 전원에 파묻혀 화가로서의 자질을 되찾은 부인도 있다고 한다. 한 직장에 오래 다니다 보면 근속휴가를 가고, 안식년 휴가도 가듯이 이제 결혼생활에서도 새장 밖의 휴가가 필요한 시대가 된 것일까.

살다 보면 혼자 있고 싶을 때가 있다. 상처 입은 동물이 동굴 속에 숨어 원기를 회복하듯 혼자 있는 것이 필요할 때도 있다. 비록 긴 시간은 아니더라도 하루 중 잠깐만이라도 오로지 자기 자신만을 돌아보는 시간을 갖는 것은 중요하다.

그럴 수 있는 적당한 공간이 있다면 더욱 좋다. 결혼 10년, 20년, 30년 등 특별한 해가 될 때마다 한 달, 6개월, 1년씩 안식년을 갖는 것도 방법일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 안식년 휴가를 마치고 훨씬 젊고 건강한 모습으로 돌아온 아내와 엄마의 모습을 바라보는 것도 나쁘진 않을 것이다. 그럴 수 있는 여유와 서로의 믿음만 있다면.

배명복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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