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 한국문화원 '초라'·주한 일본문화원 '당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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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이웃이 서로를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서로의 문화를 이해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이를 최전방에서 지휘하는 사령탑은 현지 주재 문화원이다.

하지만 한 ·일간의 무역역조 만큼 문화교류에서도 불균형이 심각하다.

일본의 경우,기존의 일본문화원외에 민간차원의 문화원을 새로 만드는 등 교류 창구를 더욱 확대하고 있다.반면 도쿄(東京)주재 한국문화원은 아직도 25년된 낡은 아파트 셋방살이 신세다.

주일 한국문화원은 도쿄시 미나토(港)남아자부주방(麻布十番)에 있는 한국민단 중앙회관 부속 9층 아파트 건물 가운데 7~9층을 임대해 쓰고 있다. 서울 한복판에 있는 일본문화원과 달리 이곳은 도쿄 도심에서 다소 떨어진 주택가다.

한국문화원은 당초 1979년 번화가인 이케부쿠로(池袋)에 있는 60층짜리 건물의 5층을 임대해 문을 열었다. 그러나 국회 국정감사 등에서 임대료가 비싸다는 지적이 나와 95년 초 이 아파트를 개조해 이사왔다.

전체 면적이 2백37평이나 사무실.창고.공용면적을 뺀 도서실.영상자료실.세미나실 등 순수 문화목적용 공간은 1백14평에 불과하다.

자체 문화행사장도 없어 민단 중앙회관의 대강당을 빌려 쓰고 있다. 이 때문에 지난해에도 문화원 신축 방안이 검토됐으나 무산됐다. 직원은 본부 파견 2명에 현지 채용 직원 8명이다.

◇ 서럽게 여는 문화행사=한국문화원이 민단 대강당을 빌려 주최하는 미술전시회.공연 등 문화행사는 1999년 10회에서 지난해는 20회로 늘었다.

올해는 40회로 불어날 것으로 보인다. 문화행사를 열겠다는 한국인.일본인의 신청은 더 많지만 그 이상은 불가능할 전망이다.

민단도 자체행사가 많아 강당을 빌릴 수 없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올들어 지금까지 신청한 행사 중 30건이 무산됐다. 게다가 민단과 공동으로 강당을 쓰기 때문에 문화원은 3개월 이상의 장기 행사계획은 수립하지 못하고 있다.

◇ 들어갈 때는 정문, 나갈 때는 아파트 출입문=한국문화원이 지난달 25일 저녁 민단 강당에서 한국 현대미술 전시회 리셉션을 열었다. 이날 하야시타 히데키(林田英樹)전 일본문화청 장관 등 한국.일본의 주요 문화계 인사 2백여명이 참석했다.

이들은 회관 정문을 통해 들어갔지만 행사 후에는 1층을 30m정도 돌아 아파트 출입구로 나와야 했다. 민단측이 오후 5시30분이면 정문을 닫기 때문이다. 김종문(金鍾文)한국문화원장은 "행사 시작 때는 사정을 해서 정문 닫는 시간을 늦췄지만 끝날 때는 어쩔 수 없었다" 며 "문화행사 때마다 일본의 정계.관계.문화계에서 주요 인사가 많이 참석하는데 매번 이런 일이 벌어져 상당히 부끄럽다" 고 말했다.

◇ 도서관 기능 마비=책을 빌려가는 일본인.한국인이 많아져 지난해(9천5백47건)는 전년보다 17% 증가했다.

그러나 한국문화원측은 1만2천권 이상은 보유하지 못하고 있다. 아파트가 낡아 그 이상 소장하면 무거운 하중으로 붕괴될 우려가 있다는 안전진단 결과 때문이다. 아파트를 빌려쓰기 때문에 마음대로 개축할 수도 없다. 이로 인해 문화원측은 새로 구하는 책의 양만큼 소장하고 있는 책을 다른 도서관 등에 보내는 실정이다.

도쿄=오대영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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