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기고 싶은 이야기들] 산은 산 물은 물 (37)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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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37. 숙박비 삼천배

친구들 사이에 출가 사실이 알려지면서 환속을 독촉하기 위해 찾아오는 친구들도 있었지만 그런 생각 없이 오는 경우도 있었다.

산중 암자를 찾아온 친구들과 환속으로 승강이를 벌이거나 지난 얘기를 하다보면 시간이 늦어져 절에서 재워줘야 하는 일이 잦았다.

친구들이 들락거리는 것을 보고도 한동안 성철스님은 아무 말이 없었다. 그러다 어느날 명이 떨어졌다.

"앞으로 니 찾아오는 사람은 누구라도 3천배 시키고 재워라. 삼천배 안하면 무조건 쫓아버리야지 재우면 안된다이. "

그런 주의를 받고 한참 지나도록 친구들의 발길이 없더니 두어달 지난 어느 가을날 친구 둘이 나타났다. 해거름에 도착했으니 자고 가야 할 사정이었다. 막상 멀리서 찾아온 친구들에게 '자고 가려면 3천배 해야 한다' 고 말할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그런데 이 친구들은 이미 내 얘기를 들어서인지 환속 얘기는 꺼내지도 않았다. 큰스님이 도인이니까 동양철학에도 도가 통했을 것이니, 사주 한번 보려고 왔다는 것이다. 순간 무어라 할 말을 잃었다. 불교와 동양철학이 다르다고 거듭 설명했다.

"큰스님은 지금까지 동양철학에 대해서 한마디 입에 올리지도 않았을 뿐 아니라, 설법할 때도 사주 같은 것은 부처님 가르침이 아니라고 하는데 어찌 그런 부탁을 하느냐. "

나중엔 아예 통사정을 했다. 3천배 얘기는 꺼내지도 못했는데 저녁 9시 취침 종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 때 방문이 와장창 부서지는 소리가 나며 확 열렸다. 어느새 성철스님이 나타나 화등잔 같은 눈을 부라리며 고함을 쳤다.

"이놈아, 다음에 누가 와도 3천배 시키지 않으면 못 잔다고 내가 안캤나. 근데 절은 안시키고, 9시 지난 지가 언젠데 이야기만 하고 있나, 이 나쁜 놈아! 3천배 안하려면 이 놈들 다 쫓아 버려!"

나만 혼비백산한 것이 아니다. 친구들도 기절초풍해 보따리를 챙겼다. 나는 "친구들을 백련암에서 재우지 않고 쫓아내겠다" 며 큰스님께 싹싹 빌었다. 부랴부랴 손전등을 찾아들고 캄캄한 오솔길로 친구들의 등을 밀었다. 떠밀려 쫓겨나는 친구들의 불만은 당연했다.

"야! 너거 스님 대단하네. 우리는 중생 아이가. 스님이 중생에게 대자대비로 대해야지, 그것도 초면에 이게 무슨 난리고. 또 하룻밤 절에 재워주는 것이 뭐 그리 대단하다고 이 깜깜한 밤중에 쫓아내노. 너거 스님 진짜 괴짜네. "

친구들에게 미안했다. 그들의 말처럼 처음 보는 순간인데 다짜고짜 면박을 주고, 3천배 안한다고 한밤중에 캄캄한 산길로 쫓아버렸으니 오죽 황당했겠는가. 아무 것도 모르고 큰스님께 사주 보러 왔다가 큰 봉변을 당한 셈이다.

친구들을 달래고 달래서 절 아래 마을 여관에 방을 잡아주고 다시 백련암으로 올라오니 밤 12시다.

잠을 자는 둥 마는 둥 하고 일어나 아침 공양을 준비해 큰스님 방으로 들어갔다. 공양상을 받으면서 큰스님이 넌지시 묻는다.

"어제 그놈들 우째 됐노?"

속으로는 '이왕 여기까지 왔으니 그냥 하루 묵고 가게 하실 것이지, 한밤중에 야박하게 쫓아낼 것까지야 있었습니까' 하는 마음이 없지 않았지만, 그렇게 말할 수는 없었다.

"어젯밤에 여관으로 쫓아 보냈심더. "

섭섭해하는 표정을 읽었는지 큰스님이 내 얼굴을 보며 빙긋 웃는다.

"이놈아! 3천배 안한다고 한밤중에 쫓아버렸으니까, 이제 그 소문 나면 니 찾으러 아무도 안올 것이다. 두고 봐라. "

아주 확신하는 말투였다. 역시 큰스님의 예언은 맞았다. 친구들의 발걸음이 뚝 끊어지고 말았다.

원택 <성철스님 상좌>

정리=오병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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