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어제는 가뭄 오늘은 물난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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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지난 주말 전국을 강타한 집중호우로 50여명이 사망하거나 실종되고 1만4천여 가옥이 침수된 것으로 집계되는 등 시간이 흐를수록 피해가 늘어나고 있다.

특히 수도 서울에는 어제 오전 2시10분부터 한시간 동안 37년 만의 시간당 최고 강수량인 99.5㎜가 한꺼번에 쏟아지는 등 3백㎜ 가까운 비가 내려 지하철 1, 2, 7호선 구간 곳곳이 침수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다행히 공휴일이라 교통대란은 없었다. 어제는 가뭄으로 난리를 치다가 하룻밤 홍수로 국가기반 시설이 물에 잠겼다.

물론 이번 호우 피해는 짧은 시간에 기록적인 비가 쏟아짐으로써 인력으로도 어쩔 수 없는 불가항력적인 요인들이 있다.

그러나 하룻밤 폭우로 인해 교통과 통신 등 가장 기본적인 국가기반 시설이 마비되는 등 수방(水防)대책의 허점을 여실히 드러냈다는 점에서 철저한 대비책 마련이 요구되고 있다.

아무리 천재지변이라 하더라도 사전에 철저히 대비한다면 그 피해를 막거나 최소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지하철 통로 입구에 모래주머니를 쌓는 등 차수(遮水)벽을 제대로 만들었거나 상습 침수지역에는 셔터를 설치하는 등 장마철 대비를 좀 더 철저히 했더라면 최소한 지하철 선로 침수는 막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또 서울시 저지대의 배수체계에도 적잖은 문제점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상당수 저지대 빗물 펌프에까지 물이 찬 것이다.

대부분 용량 부족으로 무용지물이었다고 하니 기가 찰 노릇이다. 현재 서울시내에는 저지대를 중심으로 91곳에 빗물 펌프장이 설치돼 있다.

서울시는 앞으로 5년간 17곳을 추가로 건설한다는 계획을 세워놓고 있다.

하지만 빗물 펌프장 설치가 수방대책의 전부일 수는 없다. 중랑천 주변 지역의 경우만 보더라도 당국은 해마다 침수방지 대비책을 내놓고 있지만 침수피해는 어김없이 되풀이되고 있지 않은가.

홍수나 가뭄의 피해를 줄이려면 보다 장기적인 안목에서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가뭄으로 농민들이 발을 굴러야 했고 양수기 보내기 모금운동이 벌어졌다. 물이 부족해 걱정하다가 다시 물이 많아 걱정하는 연례행사를 언제까지 되풀이해야 하는가.

이는 무엇보다 전체 강수량의 3분의2가 여름철에 집중되는데다 산이 많아 76%가 강.바다로 흘러가 버리는 우리나라의 기상.지형적 특성에 기인한다.

더구나 5년 후면 물 부족 현상이 본격화할 것이란 예측마저 나와 있다. 벌써 세계 여러 나라들이 물 부족에 시달리고 있으며 이를 둘러싸고 국가간 전쟁으로까지 치닫기도 한다. 그만큼 물관리는 국가안보와도 직결된 문제가 된 것이다.

따라서 정부와 각 자치단체들은 이제부터라도 특단의 치수(治水)책 마련에 나서야 한다.

지역주민들의 반발에 눈치만 보지 말고 다목적 댐이든 소규모 댐이든 장마철 비를 가둬둘 수 있는 댐 건설을 늘려야 한다.

아울러 지형만 탓할 게 아니라 하천 준설이나 획기적인 배수체계 마련 등 대도시 저지대의 침수를 막을 근본 대책을 세워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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