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 '간판스타'등 한때 절판 인기작 재출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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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2면

영화가 그렇듯 '좋은' 만화는 재미없을 확률이 크다. 평론가들이 극찬하는 작품일수록 대중의 입맛에는 마땅찮을 때가 많은 법인데 최근 글논그림밭에서 내놓은 두 편의 만화는 예외다.

'해방 이후 좋은 우리 만화' 1위와 4위(월간 『가나아트』선정)라는 타이틀을 달고 있지만, 삶의 정곡을 찌르는 톡 쏘는 리얼리즘의 맛을 '재미' 아닌 다른 말로 설명하기는 힘들다.

이희재의 『간판스타』와 오세영의 『부자의 그림일기』. 두 편 다 낯선 제목은 아니다. 1990년대 중반 나왔다가 출판사 사정으로 절판된 것을 다시 냈다. "우리도 이제 '고전' 이라 불릴 만화를 한두 권쯤 갖고 있어야 한다" 는 것이 출판사측의 복간의 변(辯)이다. 소장을 염두에 두었기 때문에 판형도 기존 만화책보다 크고 지질도 좋다.

『간판스타』의 시대적 배경은 6월항쟁 등으로 한국 현대사가 몸살을 앓던 시기다. 이 책을 읽다 보면 격동의 시대를 살아가는 서민들의 애환을 결코 사소하다고 폄하할 수 없게 된다. 이런 힘을 부여해주는 것은 『태백산맥』의 조정래를 떠올리게 하는 걸쭉한 입담과 이를 받쳐주는 사실적인 그림이다.

고향을 등지고 상경한 청소부가 잇따른 사고로 아이들을 잃는 '새벽길' , 도회지에 나가 성공한 줄 알았던 경숙이가 서울 한 룸살롱의 여급이었다는 '간판스타' , 남아선호 때문에 늘 구박받던 막내가 실은 부모를 가장 챙기는 효녀였다는 '김종팔씨 가정 소사(小史)' 등 일곱 편의 단편이 실려 있다.

모두 열세편을 담은 『부자의 그림일기』는 연출력이 돋보이는 수작이다.

무언극마냥 대사 없이 그림만 나가는 정지된 컷들은 만화가 단숨에 읽어내려 간 뒤 던져버리는 '일회용' 이 아니라 시처럼, 소설처럼, 그리고 영화처럼 대목마다, 장면마다 잠시 정지의 순간을 가져야 하는 작품임을 깨닫게 해준다.

'탈출' 등은 말풍선 없이 의성어만으로 내러티브를 끌고 가는 실험성을 보여주기도 한다.

한국 만화의 낮은 수준과 부족한 작가정신에 대해 투덜거렸던 독자들에게 보란 듯이 권할 만한 책들이다. 각 9천5백원.

기선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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