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글과 세상] 인터넷 '세무폭언'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9면

"여기는 남의 홈페이지입니다. 어떤 의미에선 대단히 사적인 공간입니다. 남의 집에 왔으면 예의를 갖추세요. 여러분이 이문열씨를 비난하는 것은 자유이나, 쓸 데 없는 비방이나 인신공격은 삼가세요. 지금 뭐하자는 겁니까? 집단으로 이지메를 하자는 겁니까? 도대체 뭐하러 그 짓을 하나요? 여러분, 이건 민주주의가 아닙니다. 이거야말로 파쇼예요. 자, 합리적으로 정중하게 발언하실 분만 빼고 나머지는 다 물러가세요. "

며칠째 소설가 이문열씨의 홈페이지 게시판을 들여다보았습니다. 이씨가 지난 2일 언론사 세무조사와 관련된 칼럼을 한 일간지에 발표한 뒤 그의 게시판에는 비난의 글들이 쏟아져 올라오고 있었습니다. 개중에는 차마 입에 담기 힘든 욕설과 비방, 인신공격의 글들도 많이 있습니다.

그것을 보다못한 '우리 시대의 게릴라 논객' 진아무개씨가 '세상에, 이게 뭐하는 짓입니까?' 고 호통을 치는 글을 올렸습니다. 이어 올바른 '비판의 자세' 에 대해서도 이런 글을 올렸습니다.

"논쟁을 하시려거든 세계관을 달리하는 모든 이가 공유하는 공통분모, 즉 상식적 소통의 논리의 장에 입장하세요. 인격은 공격하지 마시고, 텍스트만 문제삼으세요. 그 텍스트의 근거, 그것의 논리구성, 그것의 현실 적합성만 따지세요.

제발 공유되지 않은 도덕을 바탕으로 서슬 퍼런 성토질 하지 마세요. 세계를 선과 악의 대립으로 보지 마세요. 설사 세계가 그렇게 되어 있다 하더라도 소통을 할 때는 절대로 그걸 전제로 하지 마세요. "

익명으로 숨은 인터넷 상에서만 서슬 퍼런 성토질이 계속되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정치.사회의 현장에서, 그것을 전하고 세태를 논하는 신문.방송에도 온통 성토질입니다. 선과 악의 생사를 건 싸움을 보는 듯해 신문과 TV 뉴스 보기가 겁난다고 하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이씨의 칼럼도 이런 세태를 염려해 '나는 선이고 너는 악' 이라며 마주보고 달리는 기관차의 브레이크를 밟아 우리 사회의 파국을 막아보자는 제안으로 읽혔습니다.

그러나 이씨는 이 칼럼으로 하여 자신의 집, 홈페이지에서 집단 구타를 당하고 있습니다. 국회의원으로부터 욕도 먹고 신문지상에서 논객들에게 그의 이력과 사상, 작품이 난자질당하고 있습니다. 그런 세태를 막아보자고 쓴 칼럼이 일파만파 두드려 맞으며 선과 악의 대결의 장의 전형이 돼버린 듯합니다.

이런 와중에서 중도적.합리적 목소리는 크게 들리지 않습니다. 이씨의 게시판을 들여다보는 저 자신도 간혹 올라오는 '합리적이고 정중한 발언' 에는 성이 안차고 더욱 강렬한 비판이나 옹호 쪽만 들여다보고 불안해 하고 있으니까요.

그러나 지금이야말로 차분한 논리의 글이 필요한 시점입니다. 설사 '파쇼' 로부터 '곡학아세' 라는 돌팔매를 맞더라도 용기 있는 지식인들의 차분한 글들이 마주보고 달리는 선과 악의 기관차에 제동을 걸 수 있습니다.

"지금 우리는 제1정부와 제2정부인 신문 사이의 갈등의 혼돈 상태에서 벗어날 수 있는 말을 끊임없이 해줄 수 있는 용기 있는 작가의 출현을 기대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 문학평론가 이태동씨가 최근 한 신문의 칼럼에서 한 말입니다. "지식인의 언로를 차단하고 봉쇄하려는 보이지 않는 정치적인 움직임이 감지되는 시점" 이라며 이태동씨는 지식인들의 용기 있는 글을 원하고 있습니다. 지식인들 힘내세요.

이경철 문화부장대우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