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 이바니셰비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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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테니스의 기원을 말할 때 중세 프랑스 귀족들 사이에 성행했던 '죄 드 폼(jeu de paume)' 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것이 일반적이다. 손바닥으로 공을 쳐서 상대 쪽으로 넘겨 승부를 가리는 게임이다.

14세기 이 경기가 영국으로 건너가면서 테니스가 됐다고 한다. 그런 이름이 붙게 된 사연에 관한 정설은 없지만 '때리다' '치다' 는 의미의 프랑스 고어 '테네츠(tenetz)' 에서 유래했다는 설이 유력하다.

1873년 영국의 군인이었던 월터 클롭턴 윙필드가 테니스를 체계화해 '스파이리스틱' (그리스어로 '놀이' 라는 뜻)이란 이름으로 특허를 낼 때만 해도 지금과 같은 테니스 붐은 상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테니스는 빠른 속도로 보급되기 시작해 US 오픈.프랑스 오픈.호주 오픈과 함께 세계 4대 그랜드 슬램 대회의 하나인 윔블던 대회가 1877년 창설됐다.

우리 시간으로 그제 밤 끝난 올해 윔블던 대회 남자단식 결승전을 지켜본 사람들은 드라마 같은 명승부의 진가를 만끽했을 것이다. 억지로 꾸민다 해도 그토록 긴박감 넘치는 드라마를 만들어 내기 어려웠을 거라는 생각도 든다.

고란 이바니셰비치(크로아티아)와 패트릭 래프터(호주)의 3시간여에 걸친 풀세트 접전은 손에 땀을 쥐게 한 한편의 대서사시였다. 6 - 3으로 첫세트를 따낸 이바니셰비치는 3 - 6으로 2세트를 내줬고, 이어 3세트와 4세트를 서로 주고받아 2 - 2가 됐다.

마지막 세트에서 두 사람은 7 - 7까지 가는 극적인 상황을 연출했다. 시속 2백㎞가 넘는 초강력 서비스의 위력 앞에 결국 래프터가 무릎을 꿇긴 했지만 최후의 순간까지 한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피말리는 명승부였다.

올해 나이 서른인 이바니셰비치는 한때 세계랭킹 2위까지 오르기도 했지만 어깨 부상으로 1백25위로 추락한 '퇴물' 의 상태에서 와일드 카드로 간신히 이번 대회에 출전했다.

1988년 윔블던 대회 첫 출전 이후 세차례나 결승까지 갔지만 번번이 좌절한 그였다. 마침내 이번 대회에서 래프터를 꺾어 13전14기의 신화와 함께 와일드 카드로 출전해 우승한 최초의 선수라는 기록을 세웠다. 역사는 도전하는 자의 몫이다. 도전하는 모습은 그래서 아름답다.

이바니셰비치는 지난해 11월 서울에서 열린 삼성오픈 대회에서 한국의 기대주 이형택에게 계속 밀리는 경기를 하다 가져온 라켓 세개를 모두 부러뜨리고 기권패한 적도 있다. 오르고 또 오르면 못 오를 리 있겠는가. 이형택, 파이팅.

배명복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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