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맘껏 먹고 돈은 양심껏' 무인주막 운영 박계주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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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각박한 세상이라지만 아직은 착한 사람들이 더 많지요. "

경북 구미시 산동면 백현리에서 '무인(無人)주막' 을 운영하는 박계수(朴桂守.54)씨. 그는 "음식을 먹은 뒤 돈을 내지 않고 그냥 가는 '얌체 손님' 들도 간혹 있지만 정직한 손님들이 대부분" 이라고 말했다.

朴씨가 지난 4월 자신의 집 마당에 맷돌 등을 주춧돌로 삼아 만든 다섯평 규모의 주막에는 돈을 받는 주인은커녕 요금표도 없다. '거울처럼 투명하고 저울처럼 정직하게 살자' 는 문구만이 손님을 맞는다.

주막 안 냉장고는 맥주.막걸리 등 주류와 라면.아이스크림 등으로 가득 차있다. 손님이 먹고 싶은 것을 꺼내먹고, 돈은 항아리에 양심껏 넣으면 된다. 커피.녹차.둥글레차.담배 등은 공짜다.

6천평 규모의 논농사를 짓고 있는 朴씨는 "9대째 살고 있는 고향 마을을 널리 알리고 싶었다" 며 "농사에 바쁘다 보니 가게를 지키고 앉아있을 수 없어 무인주막을 생각해 냈다" 고 말했다.

朴씨는 손님들을 위해 연자방아.지게 등 옛날 농기구와 생활용품 등 수백여점을 가게 안과 마당에 전시해 놓았다.

하루 평균 손님은 20~30명. 최근엔 소문이 퍼져 인근 저수지에서 낚시하는 사람들과 가족 단위 방문객도 찾아오고 있다. 주말엔 50명까지 몰려든다. 1주일 매상은 40만~50만원. 애초부터 큰 이윤을 바라고 시작한 장사가 아니기에 따로 장부를 만들지 않았다.

무인주막을 내겠다고 하자 "농사짓는 사람이 왜 이상한 짓을 하려고 하느냐" 며 극구 말렸던 부인 박선희(53)씨는 동네 사람들과 손님들에게서 "고맙다" 는 말을 들으면서 불평하지 않게 됐다.

朴씨 부부는 10여평 규모의 황토방을 만들어 오가는 이들에게 쉼터로 제공할 계획이다. 朴씨는 "믿고 사는 사회가 돼 우리 무인주막 같은 가게가 많이 생겼으면 좋겠다" 며 활짝 웃었다.

구미=김현경, 사진=조문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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