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산 윤선도 녹우당서 왕위전 도전기 첫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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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0면

비에 잠긴 고산(孤山) 윤선도(尹善道)의 고택에서 어부사시사를 읖조리며 바둑 한수…….

중앙일보가 주최하고 삼성전자가 후원하는 제35기 왕위전 도전5번기가 14일 전남 해남의 녹우당(綠雨堂)에서 개막된다. 녹우당은 윤선도 선생의 옛 집.

해남에선 일찌감치 '왕위전 해남개최 추진위원회' 를 만들어 위원장인 명채규(해남 예총사무국장)씨 등 25명의 지역인사들이 왕위전 유치를 추진해 왔는데 그게 결실을 보게 된 것이다.

"해남 땅끝(土末). 듣기만 해도 가슴이 뭉클하고 한번쯤 가보고 싶은 곳. 차의 성지 대흥사 일지암, 추사 김정희와 초의선사가 교류를 나누고 다산 정약용과 학문을 논하던 곳. 조선조 단가(短歌)의 1인자로 오우가.어부사시사 등을 남긴 윤선도 선생의 고택.

이곳 땅끝마을에서 전통깊은 왕위전 바둑을 한판 펼친다면 지역문화를 한단계 높일 수 있는 기회며 놀이문화가 퇴폐적으로 흐르는 작금의 현실을 건전하게 전환시킬 수 있는 기회…. "

해남에서 왕위전을 유치하고자 보내온 취지문의 일부인데 고향에 대한 자긍심과 바둑에 대한 사랑이 절절이 묻어난다.

이렇게 해서 좋은 대국장은 정해졌지만 왕위 이창호9단과 싸울 도전자가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 이세돌3단이 본선리그의 마지막 판에서 선두 조훈현9단을 꺾어 조9단.이3단.안영길4단 3명이 5승2패로 동률이 됐기 때문이다.

결국 3자 토너먼트로 도전자를 결정하게 됐는데 추첨에서 조9단이 부전승을 뽑아 4일 안영길4단과 이세돌3단의 대국이 먼저 열렸고 여기서 안4단이 2백17수만에 흑불계승을 거뒀다. 조9단과 안4단의 도전자 최종결정전은 12일 한국기원에서 열린다.

이세돌3단은 지난해에도 재대결에서 서봉수9단에게 패해 도전권을 놓쳤는데 올해도 막판 풍운만 일으킨 채 무대 뒤로 사라졌다 . 최근 결정적인 판에서 계속 벽에 부닥치고 있는 이3단의 모습은 그를 기대하는 팬들의 아쉬움을 자아내고 있다.

이제 왕위전 도전자는 조훈현9단과 안영길4단 두 사람 중 누구로 낙착될까. 우여곡절 끝에 원래 선두였던 조9단이 제자리를 찾아갈 것인가, 아니면 안4단이 때를 놓치지 않고 어부지리를 취할 것인가.

이세돌의 탈락은 조9단을 편하게 해주는 측면이 있다. 조9단은 최근 이3단에게 4전4패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안4단도 모처럼 잡은 생애 첫 도전 기회를 그리 쉽사리 날려버리진 않을 것이다.

12일 밤 도전자가 가려지면 왕위전 일행은 13일 기차편으로 해남으로 떠난다.

박치문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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