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뉴딜'이 연기금 끌어다 쓰는 것이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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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여당과 정부.청와대가 머리를 맞대고 경기를 살릴 묘안을 짜기 위해 모였다. 그래서 나온 게 내년 하반기부터 민간자본과 각종 연기금을 동원해 10조원 규모의 투자사업을 하겠다는 것이다. 한국판 뉴딜(New Deal)정책이다.

여권이 경제를 살리겠다고 팔을 걷어붙인 것은 바람직한 일이다. 그러나 아무리 좋은 의도라고 해도 일에는 순서가 있는 법이다. 경제가 어렵다고 비상대책을 세울라치면 우선 경제가 어렵다는 현실 인식이 있어야 하고, 왜 어려운지에 대한 판단이 있어야 한다. 그런 다음에 대책이 나와야 제대로 된 정책을 세울 수 있다.

그런데 이번에 나온 이른바 한국판 뉴딜정책은 순서가 한참 엇갈렸다. 정부와 여권은 그동안 우리 경제가 위기가 아니라고 강변해 왔다. 언론과 비판세력이 위기를 조장한다고 주장했다. 경제가 진정 어렵다는 사실 자체를 부인했다. 그러다가 필요하면 경기대책을 쓸 수도 있다는 쪽으로 슬그머니 입장이 바뀌었다. 경제 현실을 인정하지 않고 원인을 제대로 짚어보지도 않은 채 경기대책 마련에 나섰다.

한국판 뉴딜정책?큰 전제는 내년 상반기까지도 경기가 풀리지 않을 것이란 판단이다. 그대로 놔둬서는 민간의 투자와 소비가 살아나기 어렵다고 보고 정부가 직접 나서 각종 투자사업을 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민간이 투자와 소비를 안 하는 것이 문제라면 할 수 있도록 여건을 만드는 것이 먼저다. 정부가 불쑥 나선다고 문제가 해결될 일이 아니다. 연기금과 민자를 동원해 투자를 일으키겠다는 발상도 시대착오적이다. 어차피 수익성이 없는 사업에 연기금과 민간의 자금을 끌어들인 뒤 국민 세금으로 적자를 메워주겠다는 것은 국민을 두번 속이는 일이다. 연기금이 손해를 보나, 그 손실을 세금으로 물어주나 어차피 국민의 주머니에서 돈이 나가기는 마찬가지다.

이해찬 총리는 "단기적인 경기대책과 뉴딜정책을 집행하면 3년 뒤 경제 전망을 자신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 사이 한국 경제는 여전히 앞을 가늠하기 어렵다는 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