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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사박물관은 상상력의 보고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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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7면

이 영화에는 매우 진귀한 광물들과 식물들, 희한하게 생긴 동물들, 그리고 하늘을 날아다니는 나비족들이 등장한다. 감독 제임스 캐머런은 어떻게 이러한 생명체들의 모습을 만들어냈을까. 그는 ‘아바타’에 대한 단초를 어디에서 얻었을까. 스티븐 스필버그가 감독했던 ‘쥬라기공원’ ‘인디아나존스’ ‘우주전쟁’ 등 흥행몰이에 성공했던 영화들과 ‘아바타’ 사이에는 공통점이 있다. 이 영화들은 46억 년이나 된 지구를 뛰어넘는 우주의 시간과 공간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는 점이다. 즉, 캐머런과 스필버그는 ‘자연사(自然史)’에 기초해 자신들의 영상적 상상력을 마음껏 펼쳐갔다는 것이다. 빌 게이츠의 말대로, 그들은 어릴 때부터 부모들의 손을 잡고 ‘자연사박물관’에서 마음껏 뛰어 놀며 우주를 상대로 게임을 즐기면서 자라났다.

자연사는 인간이 발휘할 수 있는 모든 상상력의 알파요 오메가다. 어릴 때부터 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자연사박물관이 있는 사회와 그렇지 않은 사회에서 자라난 어린이들의 자연과 우주에 대한 상상력은 큰 차이가 난다. 자연사박물관은 자연사에 관한 소장품을 단순히 전시하는 곳이 결코 아니다. 어린이들의 상상력을 키워주는 교육 콘텐트를 위한 공간이다. ‘돌에서 수정으로, 수정에서 금속으로, 금속에서 식물로, 식물에서 동물로, 동물에서 사람으로’ 어떻게 변해 가는지를 알게 되고 대자연의 이런 진화 과정을 통해 무한한 상상력을 키워갈 수 있는 것이다.

100여 년 전에 영국·프랑스·독일·오스트리아 등은 100개 이상의 자연사박물관을 나라 곳곳에 설립해 국민을 위한 교육 공간으로 제공해 왔다. 제임스 쿡 함장이 하와이로, 프랑스의 탐험가 부겡빌이 남태평양의 타히티 등 열대 해양으로 누비고 다녔던 18세기부터 선진국들은 ‘자연사-예술-무역’이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임을 알았다. 선진국들은 자연사를 통해 무역 상품을 만들어갔고, 예술적 상상력과 결합해 나갔다. 그들에게 자연사박물관은 문명의 표지(標識)였다.

하지만 한국에서 자연사박물관은 아직도 찬밥이다. 인구의 절반이 거주하는 수도권에는 이에 걸맞은 규모의 자연사박물관이 전혀 없다. 세계 최고를 자랑하는 런던자연사박물관은 18세기부터 영국 사회가 정성을 들여 키워온 사회 전체의 합작품이다. 대한민국도 국립자연사박물관 설립을 당장 서둘러야 한다.

이종찬 아주대 교수·과학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