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생 어학연수 붐에 학부모 허리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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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초등학교 6학년 딸을 둔 주부 李모(39)씨는 요즘 딸과 눈 맞추기를 애써 피하고 있다. 딸이 며칠 전부터 "친구들처럼 해외 어학연수를 보내달라" 며 떼를 쓰고 있기 때문이다.

李씨는 "남편의 월급으로 빠듯한 살림을 하고 있는데 3백만원이 넘는 연수비를 마련하기 쉽지 않다" 며 "안보내면 아이 기가 죽을 것 같아 골머리를 앓고 있다" 고 말했다. 일부 초등생 사이에서 최고 4백만원 가량 들어가는 여름방학 해외 어학연수 바람이 일고 있어 학부모들의 한숨이 커지고 있다.

6일 전국 대도시 유학원과 여행사들에 따르면 여름방학을 앞둔 요즘 어학연수를 신청하는 초등생들이 회사마다 10명 이상 된다.

지난달 초부터 해외 어학연수자를 모집한 전주 Y유학원의 경우 신청자 50여명 중 초등생이 13명이나 된다는 것이다.

전주 J초등학교의 경우 전교생 5백여명 중 지난달 어학연수를 위한 비자발급 목적으로 재학증명서를 뗀 학생이 20여명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 학교 朴모(47)교사는 "과거 초등생들의 해외 어학연수는 거의 없었으나 지난해부터 크게 늘어 개학하면 학생들간에 위화감까지 조성된다" 고 말했다.

초등학교 4~6년생의 어학연수 비용은 미국.캐나다.뉴질랜드 등 영어권 지역이 3주간 3백만~4백50만원, 필리핀 등 동남아시아권은 1백30만~2백만원이다. 웬만한 직장인들의 월급을 웃도는 금액이다.

R유학원 金모(54)원장은 "2~3년 전만 해도 초등생 어학연수는 부유층 자녀들이 대상이었으나 최근에는 중산층 자녀들도 많다" 며 "아마 지난해부터 영어교육이 의무화됐기 때문으로 추정된다" 고 말했다.

회사원 강은철(45)씨는 "어학연수가 아이의 기를 살려주는 측면은 있지만 들어간 돈 만큼 영어실력 향상이 되지 않는 것 같다" 며 연수에 부정적인 입장도 내비쳤다.

서형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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