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 욕설의 시대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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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6일 오전 소설가 이문열씨로부터 전화가 왔다.

"내 인터넷 홈페이지가 다운됐다. 일부러 폐쇄한 것이 아니라 접속이 폭주해 용량을 감당하지 못하자 홈페이지 운영회사(http://www.readers.co.kr)에서 일시적으로 폐쇄한 것이니 오해가 없었으면 한다. "

李씨가 언론사 세무조사와 관련해 지난 2일 한 일간지에 '신문 없는 정부를 원하나' 라는 칼럼을 발표하자 李씨의 홈페이지(http://www.munyol.pe.kr) 게시판은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인신 공격과 욕설이 난무하는 가운데 격려의 글도 올라오고 있었다.

그런 가운데 '그 칼럼에 실망했다. 소장하고 있는 당신의 소설을 반납하겠다' 는 한 네티즌의 글에 이씨가 '반송하라. 환불해주겠다' 고 답하자 게시판은 일파만파, 책 반납과 환불 소동이 이어졌다.

인터넷 공간에서 익명으로 벌어지는 일이고, 그것도 편을 갈라 욕설이 난무하고 있어 기사화하기에는 문제가 있었다.

그러나 자신의 이름으로 나온 책을 줄잡아 2천만권 가량 판 우리 시대 최고 베스트셀러 작가의 책 반납과 환불 소동이기에 기사 가치가 있어 李씨의 심경을 물어 기사화했다(7월 6일자 31면).

전화가 온 시간에 기자는 6일자 한 일간지에 실린 민주당 추미애 의원의 '술자리 욕설' 을 읽고 있었다.

李씨의 게시판에도 그런 종류의 욕설들이 많이 올랐다. 물론 익명으로 숨을 수 있는 사이버 세상에서나 가능한 욕설이다. 전화나 인터넷에서 익명으로 쏟아지는 폭언에 대꾸할 방법을 못찾아 날강도당했다는 황당함을 경험한 사람도 많을 것이다.

익명이 실명화되고 있는 것인가, 실명이 익명화되고 있는 것인가. 좌와 우, 진보와 보수, 실명과 익명이라는 허깨비들 사이에서 중도적.실체적 지성과 양심과 줏대는 압살되고, 마주보고 퍼붓는 욕설의 시대에 우리는 서 있단 말인가? 6일 오후 복원된 李씨의 홈페이지에는 '도대체 이 나라가…' 라는 30대 직장인의 글이 올랐다. 그는 "무엇이 옳고 그른지 모르는 상황에서 민초들의 한숨은 깊어만 간다" 고 한탄하고 있었다.

이경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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