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4회 삼성화재배 월드바둑마스터스] 전쟁광(狂) 구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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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9면

제10보(97~112)=용사는 전쟁터가 좋다. 타고난 용사인 구리 9단은 먼지바람 자욱한 전쟁터에서 큰 칼을 휘두르며 달리고 싶어 한다. 97로 일어난 뒤 중앙으로 죽죽 뻗어 가자 잠시 소강상태를 보이던 바둑은 다시 난전의 소용돌이에 빠져든다. 이런 구리를 잘 잡는 사람들이 있다. 대개는 칼 대신 주판을 든 사람들이다. 하지만 오늘의 천야오예 9단은 주판을 멀리 던져 버렸다. 패기 넘치는 21세 청년답게 구리와 한 치도 물러서지 않은 채 정면으로 맞붙고 있다.

중앙이 어찌된 거냐고 묻는다면 아무 할 말이 없다. 대마가 미생인 상태에서 흑은 또 중앙에 미생마를 만들고 있다. 105에서 주력은 살았다고 봐 줄 수 있다. 하지만 중앙을 뻗어 나간 또 하나의 흑은 뿌리가 잘린 형태여서 약하기 짝이 없다. 잡힌다면 대손해가 분명하다. 이 대목에서 구리는 또 109로 움직이며 분탕질을 친다. 뭐가 뭔지 알 수 없는 혼돈의 연속이지만 그 밑바닥을 관통하는 한 가지가 있다. 흑은 끊임없이 귀의 맛을 노리고 있다는 것. 그것이 백에 무언의 협박이 되고 있다는 것. 모양 사납게 111로 살리는 이유는 또 있다. ‘참고도’처럼 흑3의 삶이 선수가 된다.

박치문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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