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마라톤] '가을 축제' 감동과 환희 안고 뛰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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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영갑씨가 결승선을 통과한 뒤 트랙에 앉아 큰절을 하려하고 있다. 옆 사람은 자원봉사자.

▶ 화려한 복장과 가발로 치장한 응원단이 연도에 서서 열심히 뛰는 주자들을 응원하고 있다.특별취재팀

화창한 늦가을 정취를 만끽한 마라톤 잔치였다. 레이스는 오전 9시 잠실주경기장 앞 도로에서 출발 예포와 함께 남녀 엘리트선수 98명(신청자 101명 중 3명 기권)을 선두로 시작됐다. 이어 마스터스 풀코스 출전자, 마스터스 10㎞ 출전자 순으로 달렸다. 여느 때처럼 풍성한 화제와 감동적인 장면이 쏟아졌다.

대회에는 대회장인 홍석현 중앙일보 회장과 이대원 대한육상경기연맹 회장, 모리스 니컬러스 아시아육상경기연맹 사무총장, 이부영 열린우리당 의장과 김덕룡 한나라당 원내대표, 최기문 경찰청장, 우리금융그룹의 황영기 회장과 김종옥 부회장 및 이종휘 수석부행장, 유석오 KTF 상무, 조용노 글로벌스포츠사장, 권영빈 중앙일보 편집인 등이 내외빈으로 참석했다. 10㎞에 출전한 최기문 경찰청장은 출발 예포를 누르는 행사에 참석한 뒤 곧바로 레이스에 뛰어들었다.

두 손 없이 42.195㎞ 완주 "달릴 땐 장애인인 줄 몰라"

"팔이 없으면 다리로 할 수 있는 것을 해보자며 달리기를 시작했지요."

사고로 두 손을 모두 잃은 김영갑(31.구미마라톤클럽.본지 4월 9일자 S3면)씨는 이날 마스터스 풀코스에서 선수 못잖은 2시간38분04초의 기록으로 완주했다. 자신의 최고기록이다. 두 손목 아래가 없는 그가 남녀 엘리트 선수들 사이에 끼여 달리는 모습은 TV 중계(KBS)로도 자주 비춰졌고, 시민들은 뜨거운 박수로 격려했다.

골인 직후 그는 트랙에서 두 팔꿈치를 짚고 두 차례 큰절을 했다. "신발끈을 묶어준 동료, 같이 뛰던 사람들의 따뜻한 격려가 있었기에 마지막까지 뛸 수 있었어요. 29km 지점을 달릴 때는 다리가 마비되는 것 같아 그만두고 싶었지만 이겨냈어요."

그가 사고를 당한 건 1998년 1월. 군복무를 마친 뒤 대기업에서 근무하던 중 변전실에서 감전사고를 당해 손목 아래를 잘라내는 수술을 받았다. 4개월 만에 직장을 그만두고 매사에 자신감 없이 살아가던 그는 2001년 4월 우연히 달리기를 시작하면서 삶이 달라졌다고 한다. "달릴 때는 내가 장애인이라는 사실을 잊어버립니다. 높았던 혈압도 정상으로 돌아왔고, 동호인들과 어울리면서 성격도 밝아졌어요."

중앙일보 마라톤은 이번이 첫 참가지만 지금껏 풀코스를 뛴 건 모두 27번이다. 마라톤을 시작한 지 두달 만에 제주도에서 풀코스를 3시간41분에 완주했다.

이날 자신의 최고 기록(2시간43분대)을 5분이나 단축한 그는 "코스와 날씨가 모두 좋았다. 초반에 오버페이스하지 않은 것이 기록을 깨는 데 도움이 된 것 같다"고 말했다. 아직까지 특별한 직업이 없이 장애인연금만으로 생활하며 달리기에 몰두하고 있다는 그는 "이제는 달리기를 좋아하는 좋은 여성을 만나 결혼하고 싶다"고 말했다.

민동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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