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가족 30명 '판소리 고수' 화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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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우리 가족만으로도 웬만한 국악콘서트를 서너개는 열 수 있죠.”

최근 회갑잔치상을 받은 조소녀(60 ·전주시 효자동)명창의 집안은 ‘판소리 명가(名家)’다.가족 중 내로라 하는 명창 ·고수 등 국악 전공자가 무려 30여명이나 된다.

판소리 가문의 주춧돌을 놓은 그녀는 20대 후반 ‘늦깎이’로 소리에 입문,1984년 광주 남도예술제에서 대통령상을 받으며 명창 반열에 올랐다.

10남매 중 다섯째인 조 명창의 영향을 받아 소리를 시작한 동생 영리(55)씨는 85년 서울국악대회서 대상을 탔다.또 영자(45)씨가 95년 전주대사습놀이서 대통령상을 차지,당시 ‘세 자매 명창 탄생’이 화제가 됐었다.

조카들도 조 명창의 멋드러진 모습에 반해 국악의 길로 들었다.전북도립국악원 악장인 용안(35)씨와 남원 국립민속국악원의 용복(33)씨 형제는 큰 오빠네 아들들이고,국립극장 창극단원 용수(34)씨는 둘째 오빠네 아들이다.모두 전국 고수대회서 장원을 거머쥔 바 있는 명고수들이다.

조 명창의 외동딸 희정(21 ·전북대 3년)씨 역시 98년 전주대사습놀이 학생부 장원을 차지한 예비 명창.큰 조카의 딸인 현정(14 ·예원중 2년)이는 99년 KBS어린이 판소리경연대회서 1등을 차지했다.또 다른 조카 ·손자 ·손녀 등이 국악 경연 등에서 타 온 상도 수를 헤아리기 힘들 정도다.

국악 가문의 문을 열은 조 명창은 갖은 어려움을 딛고 일어선 열정의 국악인.

충남 온양에서 태어나 소리를 배우고파 서너번 가출을 시도한 끝에 29살에 정식으로 판소리 공부를 시작했다.‘놓친 세월’이 안타까워 밤낮을 가리지 않고 소리를 해 목을 혹사한 탓에 40대에 성대 결절이 생기기도 했다.

“목에 이상이 생긴 것도 모른 채 아픔을 참고 소리를 하다보면 입 안에 피가 흥건히 고이곤 했습니다.”

병원에서는 “소리를 그만두라”고 했지만 그녀는 “죽어도 소리는 포기할 수 없다”며 일곱번에 걸쳐 성대 수술을 받았다.그 와중에도 4시간짜리 완창발표회를 갖는 등 무대에는 계속 섰다.

그녀는 80년대 후반부터는 직접 소리하기보다는 제자 교육에 더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요즘도 건강이 좋지 않지만 한번 강습을 시작하면 제대로 익은 소리가 나올 때까지 몇시간이고 북 장단을 두드린다.

그녀는 소리 자체 못지 않게 예의범절과 예술가 정신을 중시한다.제자들이 무대에 서는 날 옷에 주름 하나라도 보이면 “다시 다림질을 하라”고 호되게 꾸짖는다.

조 명창은 “돌이켜 보면 소리 하나만 쳐다보고 외길을 달려왔고,3대에 걸쳐 알토란 같은 국악 가족을 이룬 게 무엇보다 자랑스럽다”며 “올 가을께 집안 식구들을 모아 국악발표회를 열 계획이다”고 말했다.

전주=장대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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