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공산당 창당 80돌] 당명 개정 왜 하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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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오는 7월 1일로 창당 80주년을 맞는 중국 공산당이 당명 변경까지를 포함한 일대 변혁을 준비 중이다. 반(半)식민지·반 봉건의 구시대를 청산하고 신중국을 건설한 중국 혁명의 주역이 올해로 여든살 생일을 맞으면서 또 한번의 변신을 모색하고 있는 것이다.

중국의 현대사는 마오쩌둥이 주도한 공산당의 역사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건국 후 이데올로기에 집착한 문화혁명의 어두운 굴레를 벗어던지고 사회주의 현대화를 일궈낸 중국 공산당이 21세기에 과연 어떤 변신의 모습을 보일지 살펴본다.

중국에서 공산당의 이름을 바꾸자는 이야기가 조심스럽게 거론되기 시작한 것은 1999년부터다.

장쩌민(江澤民)주석의 정치 고문으로 알려진 왕다오한(汪道涵)이 상하이(上海) 일부 학자들과 함께 '세계의 사회민주 연구 보고' 를 내놓은 무렵이다.

몰락한 동유럽 공산당이 사회당.민주사회당 등으로 변신한 과정과 유럽의 사회민주당을 연구한 보고서로 汪이 직접 江주석에게 건넸다고 한다.

비슷한 무렵 중국의 진보적 학자 차오쓰위안(曹思源)이 중국 공산당이란 당명을 사회민주당으로 바꾸자고 주장하기 시작했다. 이는 중국이 97년의 제15차 당 대회를 통해 사유(私有)경제의 실체를 인정하고 99년 헌법을 수정해 사유 경제를 법률적으로 보장한 것과 때를 같이 한다.

중국 이론계는 덩샤오핑(鄧小平)이 '중국 특색의 사회주의 시장경제' 를 제창할 때쯤에 중국 공산당의 당명 변경 필요성이 사실상 잉태됐다고 설명한다.

'검은 고양이든, 흰 고양이든 쥐만 잡으면 된다(黑猫白猫論)' 는 이론에서 볼 수 있듯 이론보다 실천을 중시한 鄧은 이론 정립에 앞서 중국을 가난에서 벗어나게 하기 위한 사영 경제 허용이라는 실천을 먼저 했다.

이는 '사회주의 초급 단계론' 으로 이론 포장을 했지만 사영 경제 비중이 커지면서 江주석 등 3세대 지도자들에게 커다란 이론적 부담을 안겼다.

무산계급 혁명을 실천하는 공산당이 생산 수단을 소유한 사영 기업주의 이익마저 보호해야 하는 현실을 설명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중국은 이같은 고민으로 그동안 치열한 이론 투쟁 끝에 마침내 江주석이 지난해 2월 광둥(廣東)시찰 때 '3개 대표론' 을 제시하기에 이르렀다.

3개 대표론이란 중국 공산당이 ▶선진 사회 생산력 발전▶선진 문화 발전 방향▶ '광대한 인민' 의 근본 이익 등 세 개를 대표해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특히 주목할 대목은 광대한 인민이 가지는 함의(含意)다. 중국 이론계는 공산당이 대표하는 광대한 인민이 과거의 노동자.농민에서 이제는 지식인과 과학자는 물론 심지어 사영 기업가(자본가)마저 포함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이는 사실상 진정한 의미의 공산당 구호에서 벗어난 것이다.

여기엔 다당제를 배제하고 일당제를 지향하려는 중국의 고민이 스며 있다. 공산당 외 다른 정당의 탄생을 허용하지 않고 공산당 일당만으로 중국 인민 전체를 끌어안으려는 계산이 작용한 것이다.

중국은 78년 개혁.개방 시작 이후 시장경제 발전에 걸맞은 정치 개혁을 요구받아 왔다.

절대적 권력은 절대적으로 부패하듯 공산당 영도자 반열인 베이징(北京) 당서기 천시퉁(陳希同)과 전국인민대표대회(의회에 해당) 부위원장 청커제(成克杰)가 부패의 오명을 남겼다.

중국은 49년 건국과 함께 공산당 일당 영도와 8개 민주당파의 합작을 내세웠지만 일당 영도가 아닌 일당 독재라는 비난을 받으며 정치 개혁의 필요성이 제기돼 왔다.

그러나 중국 지도부는 서구처럼 양원제나 다당제를 시행할 생각이 없다.

중국의 오랜 역사 경험을 볼 때 다당제 시행은 엄청난 혼란을 초래, 중국을 분열시킬 것이란 우려 때문이다.

江주석은 "다당제 실시가 곧 민주화는 아니며 또 올바른 정치 개혁은 아니다" 고 주장해 왔다.

주룽지(朱鎔基)총리도 올해 초 독일 인사와 만난 자리에서 "중국은 결코 서구식의 다당제를 도입하지 않는다" 고 못박았다.

그러나 덩리췬(鄧力群) 등 보수파는 "3개 대표론은 공산당이 사영 기업주의 이익마저 대변, 모두 끌어안겠다는 것이지만 그렇게 되면 이제 공산당이 아니다" 고 강력히 반발했다.

이로 인해 올해 초에야 공산당 명칭 변경이라는 혁명적 발상이 정식으로 검토되는 단계를 맞은 것이다. 중국 공산당은 현재 여러 대안 가운데 유럽의 사회민주당을 가장 적극적으로 고려 중이라고 중국의 이론계 인사들은 말한다.

서구인들의 반감을 사지 않으면서도 집권까지 하는 사회민주당에 강하게 끌리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연내 세계무역기구(WTO) 가입을 앞둔 중국은 당명 변경으로 공산당 명칭이 여타 자본주의 국가에 준 부정적 이미지 해소에도 큰 도움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중국 공산당이 사회민주당으로 당명을 바꿀 경우 이에 맞춰 중국의 사회에 엄청난 정치 개혁 바람이 불 것으로 보인다.

베이징=유상철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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