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기고 싶은 이야기들] 산은 산 물은 물 (20)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8면

20. 연등 없는 백련암

공양주로서 밥 지으랴, 나무 울력 나가랴, 철철이 농사지으랴…. 짬짬이 예불하고 참선을 한다고 하지만 몸이 피곤하다보니 공부가 쉽지 않았다. 아침 먹고 울력, 점심 먹고 울력, 저녁 예불을 마치고 비로소 좌복(좌선할 때 깔고 앉는 큰 방석)위에 앉으면 몸이 천근만근이다.

산사(山寺)의 취침시간은 저녁 9시, 기상시간은 새벽 3시다. 처음 출가해서는 저녁 9시에 잘 수가 없었다. 속세에 살 무렵 거의 12시가 넘어서야 자는 것이 습관이었으니 초저녁에 잠이 올 리가 없다.

이리저리 뒹굴다 보면 금방 잠든 것 같은데 새벽 3시 기상종이 울린다. 억지로 일어나 눈을 비비며 세수하러 나오면 벌써 큰스님 방에선 우렁찬 백팔배 예불소리가 울려나온다.

"대자대비 민중생, 대희 대사…. "

큰스님의 염불소리에 덜 깬 잠이 화들짝 달아난다. 그렇게 아침 예불을 올리고 하루를 시작하니 낮에는 잠이 그렁그렁 고였고, 심할 때는 연신 하품만 하는 날도 많았다. 그렇다고 행자가 뒷방에서 낮잠을 잔다는 것은 생각도 못할 일이었다.

"행자가 낮잠 자다 큰스님께 걸리면 당장 그날로 보따리 싸야 한다" 는 원주스님의 공갈 아닌 공갈이 있었기에 낮잠은 꿈도 못 꾸었다. 책상 앞이나 좌복 위에서 조는 것이 고작이었다.

그런 가운데 출가하고 처음으로 '부처님오신날' 을 맞았다. 절에서는 가장 큰 잔칫날이다. 보통 연등을 달기 위한 준비에 분주할 텐데 백련암은 그런 모습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몹시 궁금해 원주스님에게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왜 백련암은 4월 초파일에 등 달 준비를 하지 않습니까?"

"등을 달지 않는 것이 큰스님 뜻이니까. "

도무지 이해가 되질 않았다. 그렇다고 또 꼬치꼬치 캐물을 수도 없었다. 사실 연등을 다는 것은 축원의 의미와 함께 시주의 의미가 적지 않다.

그런데 성철스님은 왠지 백련암에 연등을 달지 못하게 했다. 연등을 꼭 달겠다는 사람이 있으면 "큰절(본찰)에 가 달아라" 며 내려보내곤 했다. 연등을 달고자하는 신도들의 불심은 이해하면서도 자신이 거처하는 암자에 연등을 즐비하게 달아놓는 것은 꺼린 탓이다. 그런 큰스님의 뜻에 따라 백련암엔 요즘도 연등을 달지 않는다.

부처님오신날 당일, 원주스님이 나와 채공(菜供.반찬 만드는 사람)행자 두사람을 불러 "오늘은 초파일이고, 또 그동안 두 행자가 고생도 많았으니 큰절에 가서 초파일 풍경을 둘러보며 좀 쉬고 오너라" 고 말했다.

큰절에 내려가니 줄줄이 수천 개의 등이 걸리고 참배하는 신도들이 북적거리고 있었다. 남의 집 일인 양 여기저기 몇번 기웃거리다 백련암으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백련암으로 오르는 오솔길로 접어들면서 뒤따라오는 채공 행자에게 또 이것저것 궁금한 일들을 쉴새없이 물었다. 뒤돌아보며 한참 말을 걸고 있는데, 갑자기 채공행자가 손가락질을 하며 소리쳤다.

"공양주 행자 앞에 뱀…. "

고개를 돌리며 "어디" 라고 말하는 순간 내딛던 발 아래 뭉클 뭔가 밟혔다. 동시에 발등이 따끔했다. 놀라 "아이쿠" 하고 외치면서 제자리에서 발을 엇바꾸며 동동거렸다. 발을 감았던 서늘한 무엇이 풀리는 기분을 느꼈다.

뒤에서 그 광경을 바라보던 채공행자가 쫓아와 "방금 독사가 물고 갔으니 빨리 양말을 벗고 독을 빨아 내야 한다" 고 독촉했다. 물린 발 쪽의 양말을 벗어보니 뱀 이빨자국이 세 군데나 선명했다. 채공 행자는 "독사가 틀림없다" 면서 이빨자국에 자기의 입을 갖다대고 열심히 빨기 시작했다.

"세상에 어째 이런 일이 나한테…. "

원택 <성철스님 상좌>

정리=오병상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