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고사격 배경] "소극대응" 여론 의식한 듯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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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해군이 24일 서해 NLL을 침범한 북한 어선에 경고사격을 한 것은 과거의 관행에 비추어보면 이례적이다. 그러나 지난번과 같은 수천t급 북한 상선에 대해서도 이런 대응을 할지에 대해선 아직 미지수라는 게 군내의 전반적인 시각이다.

◇ "왜 경고사격을 했나" =합참 고위관계자는 "어선이지만 우리의 검색에 응하지 않고 오히려 횃불을 던지는 등 위협적으로 나왔기 때문에 '교전규칙' 대로 경고사격을 했다" 고 말했다.

그러나 이번 대응은 해군이 지금까지 NLL을 침범한 북한 어선에 대해 사격을 자제해 오던 관행과는 차이가 있다.

1999년 연평해전 때도 북한이 먼저 사격한 뒤에야 해군이 방어적인 차원에서 사격을 했다.

이같은 해군의 태도 변화는 지난 2일 이후 북한 상선의 NLL.영해 침범에 대해 군당국이 소극적으로 대처했다는 비판적 여론을 의식한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군 수뇌부의 골프사건 등으로 더욱 떨어진 군의 위상을 회복시키겠다는 의미가 깔린 것으로 관측된다.

해군은 이날 NLL을 침범한 북한 어선이 검색에 불응하자 곧바로 합참 지휘부에 보고한 뒤 2함대 사령관의 지휘를 받아 경고사격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2함대사령관은 작전예규에 따라 사격명령을 내리기 전에 합참 등 윗선과의 교감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해군이 앞으로 북한 상선이 NLL을 침범했을 때도 강력대응할지에 대해서는 의문이라는 게 군사전문가들의 견해다.

물론 합참 고위관계자는 "앞으로도 통신검색에 응하지 않으면 상선이라도 이번처럼 대응할 것" 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수천t급의 북한 상선이 침범하면 함포사격을 하거나 특수부대를 동원해야 퇴각시킬 수 있다는 게 군의 설명이다. 때문에 남북관계를 고려하는 정부의 입장을 감안하면 이번처럼 강력대응할 가능성은 작다는 게 이들의 판단이다.

◇ 단순 침범인가=합참은 이번 북한 어선의 NLL 침범을 일단 단순 침범으로 추정하고 있다.

합참 관계자는 "침범 당시 해상에는 짙은 안개가 끼어 있었는데 북한 어선은 위치를 파악할 수 있는 자동항법장치(GPS)도 없었다" 면서 "특히 북한군이 경고사격 후 전혀 특이동향을 보이지 않은 것 등으로 미뤄 단순 침범일 가능성이 크다" 고 밝혔다.

다만 북한 당국의 고의성이 개입됐다면 다시 한번 우리 정부와 정치권을 흔들려는 의도로 볼 수 있다. 한 예로 "총 쏜다고 전쟁이 나느냐" 의 논쟁이 또 일고 있기 때문이다.

이철희 기자

*** 유엔사 交戰규칙

합동참모본부가 24일 서해 NLL을 침범한 북한 어선에 경고사격을 하면서 근거로 제시한 '유엔사 교전규칙' 은 정전협정에 따라 북한과의 무력충돌을 가능한 한 막기 위해 경고에서부터 사격까지 단계적으로 강도를 높여가는 전투규칙이다.

합참은 정전협정을 준수하기 위해 교전규칙을 다양한 상황별로 '작전예규' 로 만들어 예하부대에 지시해놓고 있다.

해군 작전예규는 NLL을 침범한 북한 선박에 대해 통신검색 →정선 →(필요시 직접 검색) →불응하면 사격을 경고 →그래도 불응 땐 경고사격 →사격 등의 조치를 취하도록 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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