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 좌담] '끝나지 않은 전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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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6.25전쟁은 한국 현대사에서 남북의 대결구조와 분단체제를 심화시킨 결정적 사건이다. 남북 화해.협력시대를 맞아 6.25의 상흔(傷痕)을 아물게 하고 하루 빨리 평화체제를 정착시켜야 한다는 목소리가 그 어느 때보다 높다.

중앙일보는 6.25전쟁 51주년을 맞아 '아직 끝나지 않은' 이 전쟁의 의미와 종결 방안을 짚어보기 위해 김점곤(金點坤) 경희대 명예교수와 서중석(徐仲錫) 성균관대 교수의 좌담을 마련했다.

徐=6.25는 남북한 모두에 큰 영향을 미쳤다. 전쟁 직후 정치적으로 남한은 반공독재체제를, 북한은 수령유일체제를 강화했다.

경제적 측면에서 보면 남쪽은 대외의존적 경제체제를, 북쪽은 내부지향적 폐쇄경제를 각각 지향했다. 사회적으로도 큰 변화가 있었다. 우리 사회에서 신분질서가 사라지고 평등의식이 높아진 게 하나의 예다. 신분질서는 일제시대와 8.15를 거치면서 상당히 사라져 가고 있었지만 6.25는 신분질서를 없애는 결정적 계기가 됐다. 이와 함께 높은 교육열이 1960년대 이후 남한 사회를 이끌어가는 원동력이 됐다.

金=6.25는 질적 사회변화를 초래했다. 6.25 당시 공산군 점령 하에 있었던 지역과 그렇지 않은 지역간에는 의식 격차가 크게 벌어졌다. 신분질서는 단순히 사라졌다기보다 '역전 현상' 까지 나타났다. 어쨌든 6.25 이후 남북의 경쟁이 본격화하면서 양쪽이 모두 교육에 힘을 쏟은 것은 어찌 보면 다행스러운 측면이다.

徐=남북 화해.협력시대에 걸맞게 6.25의 아픔을 승화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북한의 변화를 유도해 진정한 협력의 동반자로 나서게 해야 한다. 반공이데올로기 강화는 북한의 변화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다. 부단한 인내로 북한을 대화 테이블로 끌어내는 한편 북한의 경제난 해결에 도움을 줘야 한다.

金=화해.협력시대라는 구호는 김대중 정부의 정치슬로건이지 오늘의 현상을 정확히 표현한 것은 아니다. 현재 남북관계는 긴장국면의 연속이다. 좁은 한반도 허리공간에 2백만명의 군사력이 대치하고 있는 현실이 이를 단적으로 말해준다.

이런 현실을 화해.협력시대라는 정치용어로 포장하려 하는 것은 사실을 왜곡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진정한 화해.협력은 군사적 긴장완화에서 비롯된다. 남북의 정상이 악수했다고 해서 지나치게 감격할 필요는 없다. 6.25를 경험한 우리가 반공이데올로기를 내세우지 않았다면 남한은 벌써 무너졌을 것이다.

徐=남북 정상회담 이후 '김정일 쇼크' 라는 말이 생겨났다. 이 말이 나온 것은 지나친 반공이데올로기에 기초한 교육 때문이다. 북한의 실체를 제대로 알려주고 김정일에 대해 있는 그대로를 가르쳤다면 '쇼크' 를 받지 않았을 것이다.

역사는 '도덕군자들이 만들어가는 게' 아니다. 닉슨 전 미국 대통령이 음모가로 비난받지만 그가 중국과의 국교정상화를 통해 데탕트 시대를 열었다는 점이 중요하다. 현실을 도덕적 잣대로 진단하면 우리는 북한과 아무런 합의도 이끌어내지 못할 것이다. 남북의 정상이 좀더 일찍 만났더라면 역사는 달라졌을 것이다.

金=역대 정권이 왜 반공을 그토록 강조했는지 꼼꼼히 생각해봐야 한다. 물론 반공을 이용해 정권을 강화한 측면도 있었지만, 남한을 공산화하려는 북한의 존재 때문이 아닌가. 북한이 없었다면 역대 정권이 반공을 그토록 강조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동안 남북관계가 꼬인 것은 남북의 정상이 늦게 만났기 때문이 아니라, 북한이 남한과의 합의사항을 이행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1992년 남북기본합의서는 기술적으로 약간 문제가 있을 뿐 완벽한 합의서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북한이 이것을 준수했다면 남북관계는 엄청 달라졌을 것이다.

徐=북한이 주적(主敵)인지 아닌지를 놓고 소모적인 논쟁을 벌이는 것은 남북관계나 우리 사회에 별로 도움이 안된다. 북한에 대한 경계를 늦춰서도 안되지만 남북관계에 지나친 긴장을 초래하는 것 역시 바람직하지 않다.

金= '주적' 표현은 적절치 않고 '가상 적' 이 옳다. 이는 잠재적인 적을 말한다. 북한의 화력은 정전 당시보다 50~60배 강화됐고 '가상 적' 이지만 굳이 감정을 자극하는 용어를 사용할 필요는 없다.

우리 군은 북한 상선 침범에 대해 올바른 대응을 못했다. 현재 군이 처한 입장을 모르는 바 아니지만 군은 본연의 임무에 충실해야 한다. 북측 행위의 배경을 면밀히 따져봐야 한다. 정부는 이면합의설을 부인하지만, 그런 의혹을 받게끔 정부가 처신하는 것은 큰 문제다.

徐=북한 상선의 북방한계선(NLL) 침범과 관련해 우리 사회 내에서 정략적으로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우리 군은 최선은 아니지만 차선책을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도 북한은 당국간 회담에 응해야 한다. 6.15 공동선언은 북한이 남한을 정식 국가로 인정하고 앞으로 남북한이 한반도 문제를 주도적으로 풀어야 한다는 것을 밝혔다는 데 의미가 있다. 이는 북한의 중요한 사고 전환이다.

이를 가볍게 봐서는 안된다. '끝나지 않은 전쟁' 6.25를 하루 빨리 종결짓고 한반도에 평화체제를 구축하기 위해 6.15 공동선언의 화해.개방 정신을 한층 강화해야 한다. 이를 통해서만 남북의 적대관계가 완화되고 평화 분위기를 조성할 수 있다.

金=남북한은 지금까지 가전(假戰)상태에 있었다. 이를 가능한 한 이른 시일 내에 부전(不戰)상태로 바꿔야 한다. 즉 싸우기 곤란한 상태로 만들어야 한다는 의미다. 첨예한 군사적 대치 상태를 그대로 내버려 둔 채 평화선언을 발표하거나 평화협정을 맺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다. 화해.협력으로 가는 첫 걸음은 군사적 긴장 완화다. 이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남북기본합의서를 북측이 충실히 이행해야 한다. 북측이 그런 의지를 보일 때 한반도에 평화가 이룩될 것이다.

徐=6.25가 남긴 문제 가운데 여태껏 논란을 빚고 있는 게 국군포로 문제다. 이 문제는 매우 복잡하고 미묘하다. 중국 내전 당시 중국공산당은 장제스(蔣介石)군의 포로를 인민해방군에 배속시킨 다음 蔣의 군대와 맞서게 했다. 6.25 때도 이런 경우가 있었다. 이럴 경우 어디까지를 국군포로로 인정해야 하는지를 둘러싼 매우 복잡한 문제가 발생한다.

북이 반공포로 문제를 들고 나올 경우 어떻게 대응할지도 생각해야 한다. 우선 국군포로 실태를 파악하는 게 중요하다. 다만 이 문제에 너무 집착해 남북관계 개선에 어려움을 초래해서는 안된다.

金=국제법상으로나 인도적으로나 국군포로는 돌려보내는 게 원칙이다. 그러나 남측의 명분론과 북측의 현실론이 맞서 쉽게 해결될 것 같지 않다. 실현 가능한 문제부터 풀어야 한다. 이를테면 사망한 국군포로의 유해 송환이나 이장(移葬)문제는 협상이 가능하다고 본다.

정리=이동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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