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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명의 법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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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별명은 제2의 이름이다. 유별난 성격이나 생김새, 특이한 행동을 콕 찍어 말해주는 것이 별명이다. 그건 주변인이나 대중이 지어준다. 갓난아기 때 부모가 짓는 본명보다 사람 됨됨이를 더 잘 압축해 준다.

요즘 경제팀 멤버의 별명이 화제다. 없는 사람이 드문 데다 톡톡 튀기까지 해서다. 최중경 청와대 경제수석의 별명은 ‘최틀러’. 몇 년 전 한국은행 발권력을 동원해서라도 환율을 지키겠다고 한 것이 아돌프 히틀러를 떠오르게 했다. 그를 천거했다는 강만수 청와대 경제특보 겸 국가경쟁력강화위원장은 소신이 강해 ‘강고집’이다. 겸직했던 경제수석 자리를 내놓은 윤진식 청와대 정책실장은 끈질기게 물고 늘어진다는 ‘진돗개’다. 한국은행 김중수 신임 총재는 ‘워커홀릭(workaholic·일중독자)’이다.

별명은 동물·물건이나 집단에도 붙는다. 옛 재무부 출신 그룹은 ‘모피아’로 불린다. 재무부를 뜻하는 ‘MOF’에 갱단 ‘마피아’를 합성한 말이다. 상명하복(上命下服)의 전통, 강력한 연대의식으로 쌓아 올린 그들만의 집단 문화가 그런 별명을 낳았다. 모피아 얘기가 나오면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은 ‘큰형’처럼 감싼다. 그의 별명은 ‘윤따거(大兄)’다.

별명은 잘 안 바뀐다. 건설사에서 일하며 ‘불도저’로 불렸던 이명박 대통령의 경우가 그렇다. 서울시장 시절의 청계천 정비, 대통령 취임 이후 4대 강 정비 사업에서 그는 변함없이 불도저였다.

당사자가 듣기 거북해하는 별명도 많다. “모두들 각하를 ‘최 주사’라고 부릅니다.”1980년 4월 청와대 경내에서 비서관의 말을 들은 최규하 전 대통령은 버럭 화를 냈다. “뭐야, 최 주사?”

별명은 적자생존(適者生存)의 법칙을 따른다. 공감하는 사람이 많아야 살아남는다. 별명은 정직하다.

애정과 존경의 대상이라면 걸맞은 별명이 꼭 있다. 천안함 실종 병사를 구하려다 순국한 고 한주호 준위는 별명이 ‘젊은 오빠’였다. 최고령 장병으로 소말리아 해역에 파병됐을 때, 위험한 해적선에 앞장서 오르는 것을 보고 젊은 후배들이 그렇게 불렀다.

중앙일보 지난달 31일자는 ‘UDT의 전설, 서해서 스러지다’란 제목 아래 그의 죽음을 전했다. 그날 신문만은 꼭 보관하겠다고 밝혀온 독자가 한둘이 아니다. 별명은 이름보다 더 오래 기억된다. 그는 우리 가슴속에 영원히 사는 젊은 오빠다.

허귀식 경제부문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