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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의가 추천한 명의] 윤동섭 강남세브란스 외과 교수→김진혁 인제대 의대 상계백병원 척추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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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제대 의대 상계백병원 척추센터 김진혁(51) 교수의 출근시간은 항상 오전 7시 이전이다. 하루 일과는 입원한 환자의 회진을 돌면서 시작된다. 회진이 끝나면 다른 의사들과 회의를 주재한 뒤 9시쯤 진료실이나 수술실로 향한다. 기자가 김 교수를 찾은 목요일 오전 외래엔 45명의 환자가 예약돼 있었다. 진료를 마친 뒤 오후 1시부터는 척추 기형 환자 수술을 집도할 것이다.

“식사는 언제 하느냐?”라는 기자의 질문에 그는 “수술실 안 간이식당에서 배달된 도시락으로 간단히 해결하면 된다”고 답한다. 외래가 없는 날은 아침부터 수술환자가 기다리고 있다.

외래가 끝난 직후 만난 김 교수의 얼굴이 밝지 못하다. 이유를 물으니 가슴 아픈 사연을 들려준다.

“달포 전 발목과 발가락 근력이 점점 약해지다 다리에 마비가 오기 시작한 55세 가장이 외래에 왔어요. 진찰 결과 척추가 좁아진 데다 디스크가 터진 것 같았습니다. 당장 척추 MRI를 촬영하고 수술 날짜를 잡자고 했지요. 그러자 환자가 난처해하면서 ‘지금은 수술할 형편이 못 되니 일단 진통제를 달라’고 부탁하는 거예요. 오늘 아침에 그분이 또 왔는데 상태는 더 나빠져 있었어요. 오늘도 ‘돈을 마련하지 못했다’며 진통제만 요구했습니다. 얼마 안 가 마비가 진행되면서 못 걷게 될 텐데….” 김 교수의 말끝이 흐려진다.

척추손상 중동근로자 보며 전공 결심

김 교수가 의사의 길을 걷게 된 데는 “우리 아들이 아픈 사람 고쳐주면서 존경받는 의사 선생님이 됐으면 좋겠다”는 아버지의 바람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평상시 기계 조립을 좋아했던 그는 의대생 때 기형인 골격, 부러진 뼛조각 등을 인체공학을 이용해 이리저리 자르고 맞춘 뒤 나사로 고정시켜 제 모습을 찾게 하는 정형외과에 매료됐다.

“20~30년 전만 해도 건설 붐이 일면서 척추골절 환자가 많았어요. 중동에서 건설 노동자로 일하다 척추가 손상돼 비행기로 실려오는 일도 허다했습니다. 척추엔 신경 다발이 지나가잖아요? 조금만 잘못돼도 마비가 올 수 있습니다. 척추수술로 많은 사람에게 신체의 자유를 되돌려줘야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척추 분야를 세부전공으로 택했어요.”(김 교수)

척추수술을 하면서 매일 환자와 함께 울고 웃는다는 그는 “땅만 보고 걸어야 했던 곱사등이 환자가 수술 후 정면으로 세상을 보면서 신기해할 때, 마비된 상태로 응급실을 찾았다가 퇴원할 때 걸어나가는 환자를 보면서 느끼는 보람과 기쁨은 제 삶에 존재 의미를 부여합니다”라며 자부심을 표출한다.

20년간 한 길을 걸어온 그의 능력은 국제적으로도 인정받았다. 2003년엔 한국인 최초로 미국척추외과학회에서 전액 경비를 지원받아 10곳의 대학병원 척추전문센터에서 그간 집도한 수술 결과를 발표했다. 그리고 미국 의사들과 함께 수술도 했다. 국제 학술지에 우수한 논문을 발표한 데다 미국 척추외과 전문가 세 명의 추천을 받은 덕분이다.

세계 최초로 척추경 나사못을 흉추에 고정한 뒤 쇠막대기의 힘으로 휜 척추를 펴주는 수술법도 김 교수팀의 업적이다. 15년 전에 국내에서 처음 시도된 이 수술은 10년 전부터 미국에서도 인정받아 지금은 널리 사용되고 있다.

김 교수는 매년 300~350명의 환자를 수술한다. 하지만 척추수술에 대해선 누구보다도 신중론을 펴는 사람이다.

“척추수술, 꼭 필요한 경우에만 받는 게 좋아”

“척추 뼈는 20대부터 조금씩 노화과정을 겪습니다. 중년만 돼도 누구나 퇴행성 변화가 있고 요통도 생길 수 있습니다. 감기 걸려도 또 걸리잖아요? 요통도 마찬가지예요. 요통 환자 100명 중 치료가 필요한 환자는 10%도 안 됩니다. 나머지 90%는 저절로 낫는다는 의미예요. 또 치료받아야 할 열 명 중에서 수술이 필요한 경우는 한 명에 불과해요. 전체 요통 환자 중 수술이 필요한 경우는 1%에 불과한 셈이죠.”

김 교수는 첨단 장비를 이용한 고가의 수술이 최고의 수술법은 아니라는 점을 거듭 강조한다. “척추수술이야말로 꼭 필요한 경우에, 학계에서 효과와 안정성을 모두 인정받은 수술법으로 받아야 합니다.”

황세희 의학전문기자·의사, 사진=최정동 기자

김진혁 교수 프로필 

▶1959년 출생

▶1984년: 서울대 의대 졸업

▶1985~89년: 인제대 백병원 수련의 및 정형외과 전공의 과정 수료, 정형외과 전문의 취득

▶1990~현재: 인제대 의대 정형외과 교수

▶1992년: 일본 홋카이도대 정형외과 척추연수 金田淸志 교수 지도

▶1997년: 경희대 의학박사 학위 취득

▶2002년: 미국 존스 홉킨스대 의대 척추외과 연수

▶논문: 2008년 SCI 논문인 『European Spine Journal』에 실린 ‘Short fusion versus long fusion for degenerative lumbar scoliosis’ 외 국내외 논문 58편


윤동섭 교수는 이래서 추천했다

“어떤 상황에서든 환자 입장 먼저 고려”

“김진혁 교수는 대학병원 척추센터를 이끌어가는 전문가잖아요? 척추 수술 명의인 건 학자들 간에 당연히 인정을 받지요. 제가 김 교수를 명의로 추천한 건 다른 이유예요. 김 교수는 척추 수술 중에서도 어렵다고 알려진 척추 기형 수술을 많이 하는 분이에요. 예컨대 강직성 척추염으로 등이 굽은 환자를 교정하려면 척추 뼈를 자른 뒤 펴주는 수술을 해야 합니다. 달리 치료법이 없기 때문에 수술이 잘되면 환자는 새로운 인생을 사는 느낌이죠. 하지만 워낙 어려운 수술이라 성공률은 60~70% 선이에요. 환자 세 명 중 한 명은 수술 과정에서 겪었던 고통이 모두 허사가 되는 셈이죠. 이런 가능성을 수술 전에 충분히 인지했더라도 막상 결과가 나쁘면 환자·보호자는 집도의에게 불쾌한 반응을 보이기 쉽습니다. 의사 역시 ‘최선을 다했는데 결과가 나쁘다고 나를 원망하면 어쩌나?’란 생각이 들게 마련이에요.

하지만 김 교수는 이런 상황에서 ‘내가 이렇게 맥이 빠지고 울적한데 환자·보호자는 얼마나 속상할까?’란 생각을 하면서 환자·보호자 불만을 경청한다고 해요. 의사라면 누구나 공감하겠지만 어떤 상황에서든 환자 입장을 먼저 고려하는 의사야말로 참된 명의라 할 수 있어요.”

강남세브란스병원 외과 윤동섭 교수가 김진혁 교수를 명의로 추천한 가장 큰 이유는 ‘역지사지(易地思之)’ 정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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