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님 돌아가신 후
남기신 일기장 한 권을 들고 왔다
모년 모일 '종일 본가(終日 本家)'
'종일 본가' 가
하루 온종일 집에만 계셨다는 이야기다
이 '종일 본가' 가
전체의 팔할이 훨씬 넘는 일기장을 뒤적이며
해 저문 저녁
침침한 눈으로 돋보기를 끼시고
그날도 어제처럼
'종일 본가' 를 쓰셨을
아버님의 고독한 노년을 생각한다
나는 오늘
일부러 '종일 본가' 를 해보며
일기장의 빈칸에 이런 글귀를 채워넣던
아버님의 그 말할 수 없이 적적하던 심정을
혼자 곰곰이 헤아려보는 것이다
- 이동순(1950~ ) '아버님의 일기장'
내 문학소년 시절 선배들은 이렇게 말했다. 고독한 체 하지 마라, 고독에 대해 쓰지 마라, 제발 고독이라는 말을 시에다 쓰려거든 먼 훗날 써라. 그래서 나는 그동안 고독을 피해 다녔다. 고독이 따라오면 축구공처럼 앞발로 걷어차 버렸다.
그런데 요즘 나는 고독이 자꾸 그리워진다. 먼 훗날이 오늘인가. 나는 고독해지고 싶은데 고독이 잘 안된다. '종일 본가' 는 시인의 선친에 대한 애틋한 그리움이기도 하고, 부러움이기도 하다. 나도 단 하루라도 일부러 종일 집에 있어 보고 싶다.
안도현 <시인>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