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실적운항 대우조선 팔 곳 골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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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기업의 운명은 실적에 좌우된다. 1999년 그룹 해체 이후 대우자동차가 제너럴모터스(GM)와의 매각협상에 매달리고, 대우전자는 원매자를 찾고 있지만 대우조선은 느긋한 표정이다.

올 초까진 대우조선도 외자유치 대상을 찾아 헤맸다. 하지만 1분기 실적이 좋게 나오면서 워크아웃(기업개선작업)졸업 이야기까지 나오자 원매자를 고르는 입장이다.

지난해 10월 대우중공업에서 분리된 대우조선은 올 초까지 유일한 원매자였던 뉴질랜드 원주민 마오리족에 매달렸다. 지난 3월 신영균 대우조선 사장이 기업설명회에서 마오리족과의 지분 매각협상이 진행 중이라고 공식 발표할 정도였다.

하지만 1분기 실적이 나온 뒤 대우조선과 채권단은 지분 매각에 소극적인 입장으로 돌아섰다. 그러자 지난 5월 한국에 온 클라크 뉴질랜드 총리가 한국 정부에 마오리족의 인수를 도와달라고 요청하는 등 대우조선과 마오리족의 입장이 바뀌었다.

지난해 호주 정부에서 막대한 어업권 보상금을 받은 마오리족은 "어장을 잃은 우리에게 조선소가 중요한 생계수단이 될 것" 이라며 대우조선 인수에 나섰다. 이들은 호주에 뉴캐슬사라는 페이퍼 컴퍼니를 설립한 뒤 지난해 말 "대우조선의 기술을 이용, 호주에 조선소를 짓는 조건으로 지분을 매입하겠다" 는 뜻을 전해왔다.

당시 외자유치가 급했던 대우조선은 12명의 인력을 호주 뉴캐슬에 파견, 조선소의 입지와 타당성을 검토했다. 올 2월에는 마오리족 10여명을 4박5일 동안 옥포조선소로 초청했다. 대우조선이란 회사를 잘 모르던 이들은 옥포조선소의 규모가 예상보다 훨씬 크자 현장견학 내내 탄성을 질렀다고 대우조선 관계자는 전했다.

특히 30만t 규모의 원유운반선(VLCC) 갑판에 올라가 "세상에서 이렇게 큰 배는 처음 본다" 며 신기해 했다는 것.

그런데 3, 4월에 원화가치가 급락(환율은 급등)하면서 대우조선의 실적이 예상보다 훨씬 좋아지자 대우조선과 채권단은 지분 매각을 서두르지 않고 기업가치를 끌어올린 뒤 높은 가격에 팔자는 쪽으로 태도를 바꿨다.

대우조선은 원래 환율 1천2백원을 전제로 올 영업계획을 짰는데 환율이 1천3백원대를 넘자 올해 매출액을 1천50억원, 영업이익을 7백60억원 늘려 잡았다. 또 환율 수혜주로 각광받으면서 주가도 올초 3천원대에서 최근 1만원을 바라보는 수준까지 올랐다. 지난 5월에 열린 기업설명회장이 꽉 찰 정도로 투자자의 관심이 높아졌다.

채권단 관계자는 "마오리족과의 협상이 깨진 것은 아니지만 아직 구체적인 움직임은 없으며 여러 협상대상 중 하나" 라며 여유를 보였다. 부실기업 정리의 최선책은 기업내용을 좋게 만드는 것이라는 점을 대우조선이 입증하고 있다.

정철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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