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틴틴경제] 집단소송제란 도대체 뭔가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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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7면

아이스크림을 좋아하는 재민이가 어느날 배탈이 났어요. 병원에 가보니 한동네에 사는 길수랑, 영희도 와 있었어요. 배를 콕콕 찌르고 설사하는 증상이 비슷했어요.

신문은 비슷하게 배앓이를 하는 환자가 전국적으로 수천명이라고 보도했어요. 전문가들이 조사한 결과 재민이가 먹은 아이스크림에 병균이 들어있던 게 문제였습니다.

재민이는 치료비로 10만원을 쓴데다 일주일동안 학교를 못갔어요. 그런데 같은 병을 앓은 길수는 증상이 심해 치료비가 백만원을 넘었고, 아이스크림 회사를 상대로 재판을 걸어 치료비를 받아냈답니다.

재민이네도 아이스크림 회사에 찾아가 치료비를 물어달라고 했더니 재판을 하라는 거예요. 그러나 변호사 비용 등 돈이 많이 들어가고, 법원에 가려니 학교를 또 빠져야 해 포기했답니다. 바로 이런 경우 피해자를 구제하는 제도가 집단소송제입니다.

길수가 재판에 이겼으므로 같은 병을 앓은 재민이는 재판을 안해도 치료비를 받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죠.

실제로 1994년 미국 미네소타주 주민들이 살모넬라균에 오염된 아이스크림을 먹고 식중독에 걸렸어요.

피해 주민들은 집단소송을 냈고, 그 결과 1만3천여명의 주민들이 80~7만5천달러씩 아이스크림 회사에서 배상을 받았어요.

하지만 우리나라에는 집단소송 제도가 없기 때문에 길수가 재판에서 이겼어도 재민이는 재판을 안하면 치료비를 받을 수 없답니다.

그렇다면 이 제도가 왜 우리나라에는 없을까요. 또 정부가 도입하겠다고 하자 왜 기업단체인 전국경제인연합회에서 반대할까요.

나름대로 이유가 있지요. 우선 재판이 많아지리란 것입니다. 적지 않은 비용과 시간이 필요하므로 재판을 하지 않던 사람들이 조금만 피해를 보아도 재판을 걸게 된다는 것이지요.

이길 승산이 있으면 피해를 보상받는 여러 사람들이 조금씩 재판 비용을 부담하면 되니까요. 38년부터 집단소송제를 도입한 미국에선 불필요한 소송도 많다는 거예요.

81년 미국에선 페놀이란 물질이 미시시피강을 오염시킨 일이 생겼어요. 그러자 주민 1백만명이 집단소송을 냈고, 페놀을 방출한 회사에선 9천만달러(약 1천억원)를 물어주었어요.

이처럼 가해자 입장에선 집단소송에서 지면 많은 피해자에게 보상해야 하므로 큰 돈이 들어가죠.

어지간한 회사는 망하게 됩니다. 그래서 집단소송을 당한 회사는 법원의 판결이 나기 전에 피해자와 적당한 선에서 피해를 보상하며 타협하는 경우도 있지요.

기업 입장에선 소송이 늘어나고 자칫 잘못하면 회사가 망할 지도 모르는데 집단소송제를 도입하는 것이 반가울 리 없죠.

그러나 시민단체에선 "여러 사람이 당하는 집단적인 피해를 구제하는데 안성맞춤" 이라며 "이 제도가 있어야 물건을 더 잘 만들고 소비자를 보호할 것" 이라고 말합니다.

사실 그동안 집단소송제를 도입하기 어려운 점도 있었습니다. 어떻게든 공장을 많이 지어 물건을 만들어 수출해 가난을 벗는 것이 환경과 소비자 보호보다 더 중요하다고 여겼던 시절이 있었죠.

정부도 이런 점을 인정해 도입을 미뤄왔는데, 이젠 우리나라 기업도 덩치가 커졌고 세계적인 기업과 어깨를 겨루려면 거짓말을 해선 곤란하고 환경과 소비자 보호를 생각해야 할 때가 됐다는 것입니다.

정부는 우선 주식투자와 관련한 분야에서 집단소송제를 도입할 생각입니다. 환경오염 등 모든 피해에 대해 집단소송제를 도입하면 기업에 큰 충격을 줄 수도 있으므로 단계적으로 도입하자는 것이죠.

기업이 거짓말(허위 공시)을 하거나, 이익이 실제보다 많은 것처럼 회계장부를 꾸미는(분식회계)경우가 있는데, 이것을 모르고 투자한 일반인들은 나중에 사실이 드러나면 주가가 떨어져 손해를 보게 되죠. 이 때 주주들이 집단소송을 낼 수 있도록 하자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피해를 본 사람들이 어떤 식으로든 보상받을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이에요. 제도가 없어 많은 사람이 피해를 보았는데도 기업이 나몰라라 하고 버티면 곤란하죠.

그렇다고 별 문제가 없는데도 걸핏하면 재판을 걸어 기업을 힘들게 하면 나라 전체적으로 문제이므로 이를 막는 장치도 있어야지요.

이상렬 기자

*** 집단소송제 비슷한 것 뭐가 있나

1984년 서울에 큰 비가 내렸어요. 유수지 수문이 망가져 망원동 일대가 물에 잠겼답니다. 피해를 본 주민 1만여가구는 수문을 관리하는 서울시에 손해를 배상하라고 소송을 냈어요. 재판이 7년이나 걸렸는데 주민들은 서울시로부터 가구당 10만~1백만원의 위자료를 받았어요. 이때 피해자들이 집단으로 소송을 냈다고 해서 '집단소송' 이라고 부르기도 했어요.

월남전에 참가했다가 돌아온 군인들 가운데 당시 울창한 밀림의 잎을 제거하려고 사용한 고엽제 때문에 후유증을 앓는 분들이 많아요. 이들 중 일부는 고엽제를 만든 회사를 상대로 재판을 걸었어요. 재판에 참여한 고엽제 후유증 환자는 수천명이지만, 실제로 법정에 나가 재판하는 사람은 10명입니다.

이처럼 같은 피해를 본 이들이 대표를 뽑아 소송을 맡기는 것을 선정당사자 제도라고 해요.

둘 다 재판을 통해 집단으로 피해를 구제받겠다는 점에선 집단소송제와 비슷하지요. 그러나 엄격하게 말해 집단소송은 아니랍니다.

집단소송은 함께 재판을 걸지 않더라도 같은 피해를 본 사람이면 모두 그 판결의 효력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망원동이나 고엽제 소송은 재판에 참여한 사람한테만 효력이 미칩니다. 주주 대표소송이란 제도도 있어요.

주주가 회사를 대신해 소송을 거는 것이죠. 97년 제일은행 소액주주들이 이철수 전 제일은행장 등을 상대로 건 재판이 여기에 해당합니다.

당시 소액주주들은 경영진이 부실 기업에 마구 대출해 은행이 부실해졌고 주가도 떨어졌다며 4백억원을 배상하라며 재판을 걸었지요.

주주들이 제일은행을 대신해 소송을 낸 것입니다. 이 경우 재판에서 이겨 손해배상을 받아도 그 돈은 모두 회사로 들어가고 재판 당사자인 주주 입장에선 당장 돈을 손에 쥐진 못합니다.

하지만 회사가 배상금을 받으면 경영이 좋아지고 이로 인해 주가가 오르는 간접 이익을 보게 됩니다.

공정거래위원회가 도입한 일괄피해구제 제도는 재판을 하는 것은 아니지만 여러 사람이 당한 피해를 한꺼번에 보상받도록 한다는 점에서 집단소송의 전 단계로 볼 수 있지요.

공정위가 일괄피해구제 대상으로 선정하고, 시정조치를 내리면 다른 피해자도 이 결정을 근거로 소비자보호원 등을 통해 손해를 배상받을 수 있답니다.

이상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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